나는 어떻게 환빠에서 벗어났는가

* 이 글은 “나는 어쩌다 환빠가 되었’었’는가” 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2006년, 어영부영 병역을 마치고, 서울에서 자취를 하며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중학교 졸업 이후 연락이 끊긴 친구가 어떻게 연락처를 알았는지 오랜만에 연락을 해왔다. 환빠질을 같이 한 동지는 아니지만, 언뜻 들은 이야기를 봤을 때 옛날 사람들은 공기와 기운이 맑아서 열심히 수양하면 하늘을 날아다니네 어쩌네 하는 소리를 하던 놈이었다. 같이 등산을 갔을 때 어지간히도 빠른 페이스로 올라가길래 운동선수 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내가 그놈에게서 운동선수의 모습을 봤을 때 그놈은 스스로를 도인이나 수행자 정도로 생각했다보다. 아니면 자기 자신을 ‘환의 정통을 잇는 계승자’ 정도로 생각했을 지도 모를 일이고. 걸려온 전화는 다단계, 보험 권유 전화가 아니었다. 한 두 마디 인사를 하고 난 뒤 꼭 보여주고 싶은 책을 택배로 보내겠다며 주소를 알려 달라고 했다. 대충 알려줬더니 며칠 뒤 환단고기가 택배로 날아왔다. 그날 이후 그놈과 두 번 다시 연락을 하지 않았다. 환을 싫어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오랫만에 연락해서 서로 잘 지냈는지 안부를 묻거나, 얼굴 한번 보자거나, 뭔가 서로 도울 일이 없는지를 묻는게 아니라, 그 모든 걸 건너뛰고 자신이 광신적으로 빠져있는 물건을 들이미는 것을 보고 친구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대충 그러려니 했다. 나는 뭔가 환의 방향성을 잃었고, 다른 일로도 많이 바빠서 예전처럼 열정적으로 좋아하거나 하지 않았다. 남의 취향이니 인정은 한다, 그런데 좀 심한 거 아니냐 싶었던 정도. ‘니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난 이제 별로 관심이 없다’ 이런 정도의 생각을 갖게 됐다.

 

영화 디워(07년 개봉)도 있었다. 개봉했을때 뭐 볼만한거 없나 하고 대충 보러 갔다. 앞서 개봉한 괴물(06년 개봉)에서 한국도 CG를 이정도는 만들 수 있다는 거 보여준 거에  하악하악을 하다보니 디워도 연장선상이겠거니 하는 생각도 있었다. 내용이 구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CG는 괜찮다 하니 시간 때우기에도 나쁘지 않을 것같고 해서 보러 갔다. 소감?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대해 짜증을 내던 중이라 ‘멍청한 블록버스터들 사이에서라면 그럭저럭 히트도 치겠는데?’정도의 생각을 했다(정확히는 중학교 때 딥임팩트와 아마게돈이 여름 내내 극장에 걸리는 바람에 목이 빠져라 기다리던 퇴마록 개봉이 2달 하고도 11일이나 미뤄져서 빡친 것도 있다. 물론 그 오랜 시간을 기다려 진주의 모 극장에서 본 퇴마록은 내 평생 처음으로 내 돈 주고 극장에서 본 영화인 동시에 최악의 참사가 됐고. 이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대한 고정관념은 얼마 뒤 아이언맨(08년 개봉)을 선두로 어벤저스 시리즈가 쏟아져나오면서 내 평생의 흑역사가 됐다)

 

중요한 건 영화가 끝나고 난 뒤였다. 공교롭게도 맨 앞줄에 앉았었는데, 뒷자리의 모든 인간들이 기립 박수를 치면서 울고불고, 엔딩에 나오는 아리랑을 따라 부르고 있지 않은가. 내 평생에 그렇게나 무서운 광경은 처음이었다. 그냥 CG 잘 썼네 생각하다 말고 그 관객들을 보고 있자 하니 ‘이것들이 미쳤나’ 싶은 생각밖에는 안 들었다. 뭐 그래도 이때까지는 ‘저렇게 좋아할 사람은 좋아하라지. 나는 취향이 별로 아닌거같다’정도였다. 내가 이렇게 관대하다. 이런 일을 겪고 나서도 ‘그래 인정은 해줄 수 있지’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다.

 

만약 이 정도로 넘어갔다면 서점에 깔린 환단고기를 보며 살짝 눈살이나 찌푸리고 말 수준으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팟캐스트가 결정타를 꽂는다. 살짝 환 냄새가 나는 ‘역사학자’가 팟캐스트에서 특별강의를 했다. 피곤하고 짜증은 나지만 그래도 들을 만한 얘기가 있겠지 싶어서 들어봤다. 그런데 중간에 공자가 한민족이라고 하더라. 뭐, 주장은 할 수 있지. 출신이 제대로 기록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설령 그렇게 밝혀진다고 해도 그렇게 이상하다거나, 말도 안된다고 욕할 일 까지는 아니니까.

 

하지만 이 순간, 정말 대오각성이라는 말이 딱 맞아 떨어질 만큼 충격적 사실을 알게 됐다.

 

‘환빠들은 왜 좋은 것만 자기들 것이라고 하고, 나쁜 것, 반성할 것, 잘못한 것 얘긴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가’

 

역사에는 다양한 사람이 등장한다. 위대하고 훌륭하고 현명한 사람들만 줄줄이 나오는 건 위인전, 그것도 책장에 꽂아두고 위인 이름들만 줄줄이 쳐다봤을 때 이야기고. 심지어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노래 가사에도 이완용이 나오지 않는가. 인간이 발전이 있으려면 잘못된 점도 돌아 보고, 이렇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반성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환빠는 반성이 없다. 자기들 주장대로 그렇게나 많은 전쟁에서 승리했고, 상상조차 못할 만큼 넓은 영토를 차지했다면 대체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과 과오가 있었겠는가. 역사상 다시 찾기 힘들 성군이라는 세종대왕이라도 화폐 개혁 실패를 비롯한 많은 과오가 있었음을 역사가 짚고 있다. 그럼 환빠들 스스로가 주장하는 그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의 과오나 반성할 일 같은 게 조금이라도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환단고기 본문에는 그런 구절들이 조금씩이나마 있는 걸 봤다. 하지만 환빠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정말 보기 힘들다. 뭔가 문제가 있다면 모든 문제의 원인은 남에게 돌려버리고, 뭔가 잘된 일이 있다면 그것으로 환을 떠받든다. 그들에게 환은 완전무결한 것이어야 하며, 반성과 성찰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반성과 성찰을 말한다면? 모든 잘못은 일제와 반민족행위자들의 잘못이라고 책임을 돌린다. 틈만 나면 주장하는 ‘역사의 왜곡으로 가려졌을 뿐 XX는 위대한 배달 겨례 동이족 중 한사람이다’라는 주장 속에서 환빠들이 악인이나 악당을 말하는 경우를 본 기억이 없다. 공자, 예수를 비롯한 유명 성인이나 위인들은 잘만 갖다 붙이는데 말이다. 지금 당장 휴대폰 전화번호 목록만 열어봐도 잘난 놈, 못난 놈, 착한 놈, 나쁜 놈이 뒤섞여있기 마련인데 저 위대한 배달겨레는 어쩜 저렇게도 순결하고 고귀하고 고결하면서도 찬란하기만 한단 말인가. 이런 걸 보고 역사라고 할 수 없다. 심지어 위대한 유일신을 떠받드는 종교 경전을 봐도 교인 개개인이나 등장 인물들의 과오, 반성이 있게 마련인데.

 

나는 평생의 공부를 게임으로 했다고 떳떳하게 말하는 사람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환빠들은 게임의 법칙을 근본적으로 위반하고 있다. 환빠의 행동은 치트키 쓰고 내가 무적입네 하면서 게임 속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는 이들과 정확하게 똑같다. 내가 한때 저 무리에 속해있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타짜의 교훈이 있지 않은가. 노름판에서  구라치다 걸리면 손모가지는 날아간다. 오락실에서 금지된 꼼수를 쓰면 의자가 날아다니게 되는 것처럼.

 

이걸 깨닫는데 무려 2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마지막 충격 반전. 이 글을 쓰면서 여기서 끝내면 안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음 주 외전으로 돌아오겠다. 분량조절에 실패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따로 한편을 더 써서라도 반드시 석고대죄를 해야 할 부분이 있다. 다음 편은 진짜 마지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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