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을 만난 사람들. 17화

미스터리 블랙코미디 『외계인을 만난 사람들』 이야기는 의문의 사건을 추적하는 스릴러에서 출발해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가로지르며 한 편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보듯 쉴 새 없이 펼쳐진다. 비정규직으로 방송국에 글을 팔아 먹고사는 작가, 그 작가의 아이디어를 빨아먹고 사는 방송국 PD, 군수품 판매업자, 그로부터 대량의 물품을 사들이려는 의문의 사람들, 그리고 산 속 기도원까지,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가운데 사건은 뜻밖의 결말에 다다른다. 과연 우리의 상식 밖에 존재하며 세상을 지배하려는 외계인의 정체는 무엇일까?


4막 2장. #교도소 면회실
무대 한 쪽에 핀 조명이 들어오면 그 아래 수인복을 입은 작가가 서있다.

작가 (객석을 향해) 통계상으로 백억 이상 규모의 경제사범은 대부분 집행유예를 받는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닌데, 특수 가택침입에 살인 미수까지 얹어서 실형을 몇 년이나 때리다니, 이럴 수가 있습니까?

무대 반대편에 또 하나의 핀 조명이 켜지면 면회를 온 감독의 모습이 보인다.

작가 (감독 쪽을 향해 몸을 돌려) 감독님, 부탁드립니다. 감독님 구글 하시죠? 거기 가상드라이브에 그동안 모아 논 자료랑 원고, 다 있습니다. 그거 가지고 감독님께서 꼭 다큐로 만들어 주세요.

감독 로그인 아이디랑 패스워드는요?

작가 (뒤쪽을 살짝 돌아본 뒤) 아이디는 유에프오 언더바 코리아구요, 비번은 감독님께서 제게 주시기로 했던 작가비 액수예요.

감독 (당황하며) 예? 제가 얼마 드린다고 했었죠?

작가 (다시 뒤를 살핀 후) 얼마 안돼요. 정말 존나 얼마 안 됩니다.

감독 (손가락으로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아~ 얼마지? (이윽고 생각이 난 듯) 아!

작가, 손가락을 자신의 입술에 갖다 대며 ‘쉿’하고 감독이 액수를 말하지 못하도록 한다.

작가 시간이 걸려도 괜찮습니다. 이 사건의 진실을 꼭 알려야 해요.

감독 (머리를 쓸어 넘기며) 진실이요?

작가 네.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틀림없이 뭔가가 더 있습니다. 부유층 방공호 이전에, 산 속 기도원 이전에, 그 이전에 더 근본적인 뭔가가 있어요. 제가 더 이상 다가가지 못하고 멈춘 그 지점에서 누군가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감독 (고개를 강하게 끄덕이며 다짐하듯) 알겠습니다. 전부 다 밝혀내진 못하더라도 지금까지의 이 자체만으로 누군가에겐 의미가 있을 수 있겠죠.

이때 면회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간수의 목소리가 들린다.

작가 꼭 부탁드릴게요.

감독 (머리를 쓸어 넘기며 비장한 얼굴로) 애써 보겠습니다.

감독 쪽의 핀 조명이 꺼지고 무대 위엔 다시 작가만 남는다.

작가 (객석을 향해) 여기까지가 여러분께 들려드릴 수 있는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지금 제가 처한 상황에서는요. 허무하신가요? 저도 그렇습니다. 답답하고 짜증이 나세요? 저도 그래요! 아직도 답하지 못한 많은 질문이 있다는 거, 저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하지만… (자신의 수인복을 둘러보며) 하지만 이 꼴을 보십쇼. 이상한 일을 당한 사람들, 그들이 무슨 일을 당했던 건지, 대체 지금은 어디로 사라져버린 건지! (사이) 그걸 찾아내려다 제가 당한 이 꼴을 보시란 말입니다. (잠시 숨을 고르며 흥분을 가라앉히고) 오늘 이곳을 떠나면 여러분들은 애써 이 밑도 끝도 없고, 결론도 나지 않은 이야기를 잊어버리려고 할 겁니다. 어쩌면 그런 의식조차 하지 않은 채 시시껄렁한 연극 한 편 본 걸로 기억에서 사라지겠죠. 하지만 제가 장담하는데 마음 한 구석은 저처럼 불편하고 찝찝할 겁니다. 왜냐구요? 여러분도 언제 여러분이 살고 있는 동네에, 여러분이 자고 있는 그 밤에, 갑자기 UFO가 나타나 여러분을 어디론가 데려갈지 모르니까요. (암전)


4막 3장. #무대
무대 중앙에 핀 조명이 들어온다. 수트케이스를 들고 서있는 목사의 모습이 나타난다.

목사 (손목시계를 한 번 본 뒤, 손에든 가방을 옆에 내려놓고) 아직 시간이 좀 남았군.

잠시 어색하게 서서 옷매무새를 만지던 목사, 객석의 관객들에게 말을 건다.

목사 뭐야 이거? 아직 안 끝났나? (손가락을 들어 객석을 한 번 쭉 가리키고는) 정말로 여태 그 덜 떨어진 작가 놈 이야기를 듣고 있는 거야? (잠시 앞자리의 관객을 빤히 바라보더니) 설마 그 놈 얘기가 진짠지 아닌지 뭐 그런 멍청한 질문을 하려고 맨 앞에 앉아 있는 건 아니지?

이때 날카로운 작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작가 목소리 당신은 악마야!

목사 (화들짝 놀라고 나서 능청맞게) 아이, 깜짝이야. (어디서 들려오는 목소리인지 사방을 둘러본 후) 뭐? 내가 악마라고? (하늘을 향해 기도를 하는 시늉을 잠깐 하고서 화를 버럭 내며) 무슨 그런 말도 아닌 소릴! (점잖게 자신의 가슴을 한 손으로 쓸어내리면서) 난 아주 충실하고 신실한 종이야.

작가 목소리 웃기지마! 당신 같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종교는 세상 어디에도 없어, 이 사이비야!

목사 사이비? (한바탕 웃고 나서) 지금 좀 오해가 있나본데, 난 눈에 보이지 않는 건 믿지 않아. 내가 섬기는 건 신이 아니야. (혼자 중얼거리듯) 내가 지들처럼 미개한 줄 아나…. (다시 정색을 하고 객석을 향해) 내가 섬기는 건! (사이) 바로 당신들이야. (객석으로 다가와 앞자리에 앉은 관객들을 쭉 돌아보며 광적인 눈빛으로) 난 늘 당신들을 섬겨왔지.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당신들이 섬기는 자들을 섬겨왔어. 당신들이 선택해서 가슴에 배지를 달아준 사람들, 당신들이 돈 대줘서 마빡에 계급장을 붙여준 사람들, 당신들이 공부시켜서 모가지에 출입증을 걸어준 사람들! 그 누구라도 상관없이 난 당신들의 선택을 존중했어.

작가 목소리 이런 개 같은….

목사 개? 개 같다고, 내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잠시 좌우를 쳐다본 뒤 타이르는 듯한 목소리로) 이봐, 개 같은 건 내가 아냐. 무슨 그런 소리를 해. 개 같은 건 저 혼자 지옥에서 빠져나와 천국에서 놀아보려고 하는 인간들이지. 총부리를 거꾸로 들고, 출세를 위해 상사와 동료의 뒤를 캐는! (사이) 그런 게 개 같은 거야. (우아한 손동작을 보이며) 나처럼 묵묵히 주인을 섬기는 일은 매우 점잖고 품위 있는 일이라네. 그런데도 난 늘 욕만 먹었어. 비겁한 주인들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충직하게 명령을 따랐을 뿐인데 말이야. 그거 참 억울할 거란 생각, 안 드나?

작가 (수인복을 입은 모습으로 무대에 등장하며) 억울하다고? (팔을 쭉 펴 손가락으로 목사를 가리키며) 당신이 억울하다고?

목사 그럼!

잠시 무대에 침묵이 잠시 흐른다. 이윽고 작가의 말이 계속된다.

작가 예전에 끌려갔던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목사 무슨 짓? (잠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아~ 그거? 몸에서 기억을 추출해낸 거야. 원래 그게 내 전공이거든. 그런데 문제는 망각이란 놈이지. 인간의 대갈통이라는 게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뒤죽박죽이 돼 버려. 뭐가 진짜로 있었던 일인지, 뭐가 자기 생각인지, 아니면 어떤 다른 놈한테 들은 얘긴지, 들었다면 어떤 놈이 해준 얘긴지, 그래서 뭘 어떻게 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니까! (사이) 내가 한 일이라곤 그렇게 엉망진창이 된 기억을 정리정돈 할 수 있도록 그저 조금, 아주 조금 도와준 것뿐이야. 그렇게 해서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거지. 그러고 나서 그 기억의 빈자리에 다른 이야기를 채워 넣어 주는 거야. 어때, 자네가 하는 일과 꽤 비슷하지? (잠시 주변을 살핀 뒤 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자네한테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한 번 숨을 크게 몰아쉰 뒤) 나한테 제일 어려운 게 뭔지 아나? 본인도 왜 끌려왔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뭔가 의미 있는 기억을 찾아내는 거야. 그건 정말 문학적 상상력이 필요한 일이지. 자네도 솔직히 그럴 때 있잖아? 결론을 미리 내 놓고 그쪽으로 이야기를 몰고 가야 하는데 뭔가 연결이 좀 부자연스러울 때. 응? 그럴 때 자네는 어떻게 하나? 작가들은 무슨 노하우가 있겠지?

작가 (목사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으며) 고작 그 따위 거짓말을 만들어 내려고 끌고 간 사람들의 몸에 온갖 몹쓸 짓을 다 한 건가? 몸과 마음, 영혼까지 파괴해가며?

목사 (멱살을 잡힌 채로) 뭐라? 허, 이거 실망인 걸? 덕분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탄생되질 않았나? (멱살 잡힌 손을 확 뿌리치면서) 원래 쓸 만한 이야기는 그렇게 탄생되는 거야. 그만한 대가를 치르고서!

작가 (목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언젠가는 내가 만천하에 당신이 누군지, 당신의 정체가 뭔지 낱낱이 밝히고 말겠어.

목사 언젠가? 허허, 하여간 찌질한 인간들은 이게 문제야. 마치 역사와 시간이 자기들 편인 듯 착각하고 산다니까?

목사, 말을 끝내고 잠시 웃은 뒤 손목시계를 쳐다보고는 옆에 놓아두었던 수트케이스를 집어 든다.

목사 어쨌든 덕분에 즐거웠네. 난 이만 가봐야겠어.

작가 잠깐! 방주는 어디 있는 거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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