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을 만난 사람들. 에필로그

위기에 처한 지구인 친구들에게

땅을 보고 다니면 돈을 줍고, 하늘을 보고 다니면 UFO를 본다는 우 스갯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깟 UFO는 봐서 뭐하겠냐만 왠지 돈 몇 푼 줍는 거 보다는 훨씬 더 삶에 의미 있는 사건이 아닐까 싶 다. 누군가는 너무 거창한 소리라고 할지도 모른다. 현실의 삶에 있 어서는 단 돈 몇 푼이라도 줍는 게 낫다는 반론도 충분히 예상 가능 하다.
돈이냐 상상이냐, 그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왜냐하면 현실에서 이 질문은 비비 꼬여있기 때문이다. 딱 떨어지게 ‘돈’ 아니면 ‘상상’을 택하라고 선택이 주어지는 게 아니라, 돈이 상상이 되고 상상이 돈이 된다고 우리를 헷갈리게 만든다. 얼마나 많은 상상이 돈이 된다고 사 람들을 홀려 주머니를 털어갔던가. 피 같은 돈인지, 피 빨아 먹히듯 빨리는 돈인지 모를 혈세를 누구 머리에서 나온 지 모를 그놈 의 상상 때문에 공중분해 시킨 게 또 얼마인가. 요새 뉴스를 보면 최 소한 조 단위의 돈은 되어줘야 그나마 눈길을 끌 수 있어 보인다. 몇 백억 정도 따위의 푼돈은 언론에서도 잠시 다루다 말고, 사람들 역시 기억 속에 오래 저장해 두지 않는다.
창조를 위해서는 상상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상상이 욕망에서부터 시작된 경우 결과는 대부분 공상으로 허탈하게 끝나고 만다. 그 과정에서 투자된 돈과 노력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손으로 흘러 들어간다. 그렇게 상상은 어쨌든 돈이 된다. 하지만 그건 당신의 머리에서 나온 상상이 아니며 당신의 계좌로 입금될 돈 또한 아니다. 그건 당신과 나처럼 평범한 지구인을 지배하려는 외계인의 머릿속에 서 나온 상상이요, 그로인해 우리의 피 같은 돈은 그들의 계좌로 입 금된다. 그리고 그들은 자손만대, 영생불사의 몫을 챙겨 이 땅에서 이륙해 어디론가 떠나고, 남은 우리들은 잉여 취급 당하면서 결혼도 못하고 아이도 못 낳고 가끔씩은 억울하게 떼죽음을 당하기도 하며 서서히 멸종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
이 희곡은 애초에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제작될 것을 현실적인 어려움을 감안해 연극 대본으로 바꾼 것이다. 그리고 그 손실분을 채워 넣기 위 해 시사 고발 프로그램의 형식을 일부 빌려 왔다. 본문에 등장하는 지명, 인명, 회사명 등등은 모두 상상의 소산일 뿐이며 특정인 및 특정사실과 무관하고 그 내용 역시 허구라는 사실을 밝힌다. ‘저들’은 상상이 현실인 것처럼 떠들지만, 나는 반대로 현실이 상상일 뿐이라 고 말하는 것이다. 일개 지구인인 나는 단지 무사 무탈하게 살고 싶을 뿐이기에 상상은 상상일 뿐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하는 것이다.
끝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의 지구인 친구들 중 이 희곡을 실제 연극으로 만들고자하는 이가 있다면 연락을 주기 바란다. 그럼 나 또한 외계인의 위험성을 알리고 그들의 계략에 맞서 싸우기 위하여 최대한 협력할 것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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