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도 별 도움은 되지 않지만, 가끔은 재밌는 것들이 있지 (2)

종요 (鍾繇, 15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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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종요. 이미지 출처는 위키백과)

 

북방엔 오호십육국이 난무하고, 강남은 송제양진이 차례로 대륙을 먹던 시절에 양나라의 뛰어난 문장가 ‘주흥사’라는 양반이 천자문을 지었다는 얘기는 이미 널리 잘 알려져 있습니다만, 그가 천자문을 만든 방식으로는, 왕희지의 글 중에서 좋은 걸 뽑아내어 ‘찬’ 했다는 설, 혹은 왕희지에 앞서 살다 돌아가신 ‘종요’라는 양반의 글에서 뽑았다는 설, 이도 저도 아니고 양무제가 주흥사를 감옥에 집어 넣고 하루 만에 짜내었다는 설 (그래서 주흥사의 머리가 하얗게 되었고, 또 그래서 천자문은 백수문으로도 부른다는 설) 등등 많은 갈래를 갖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은 잘 읽지도 않는 천자문을 누가 지었든, 저같은 사람에게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제가 필요한 건 단지 별 볼 일 없는 인생에 잔돌을 던져 생기는 소소한 재미일 뿐이죠. 방금 말한 사람들중에서 종요는 꽤 흥미로운 분이니 한 번 얘기해 보겠습니다.

 

종요라는 분은 아직 삼국이 정립되지 않았던 후한 말인 서기 151년에 태어납니다. 이각/곽사의 난부터 (삼국지연의 소설만 읽으신 분들조차 알 수 있듯이 삼국시대의 초반부 입니다. 동탁이 막 죽고 난 다음이니까요.) 등장하고 이 후 순욱의 천거로 조조 밑에서 벼슬을 하고, 원소와의 관도 전투에서는 말을 2000필이나 조조에게 바치는 것으로도 나옵니다. 성품이 곧고 사리 판단이 좋아 관료의 모범이라는 평을 듣기도 합니다만 여기까지라면 별 재미가 없지요. 🙂

실제 벼슬로도 상국과 태위에 올랐고, 서성 왕희지의 해서 이전, 즉 해서가 정립되기 전의 해서의 창시자(?)가 되시며, 앞서 얘기했듯이 천자문의 저자로도 추정되시는 종요님의 일화 중, 가장 재밌는 부분은 정사 삼국지 <종요전>에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陸氏異林曰:繇嘗數月不朝會,意性異常,或問其故,云:「常有好婦來,美麗非凡。」問者曰:「必是鬼物,可殺之。」婦人後往,不即前,止戶外。繇問何以,曰:「公有相殺意。」繇曰:「無此。」乃勤勤呼之,乃入。繇意恨,有不忍之心,然猶斫之傷髀。婦人即出,以新緜拭血竟路。明日使人尋跡之,至一大冢,木中有好婦人,形體如生人,著白練衫,丹繡裲襠,傷左髀,以裲襠中緜拭血。叔父清河太守說如此。清河,陸雲也。

육씨 이림에서 : 종요는 수 개월동안 조정의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고, 성정이 이상하였습니다. 혹자가 연고를 묻자 말하길, ‘어떤 부인이 항상 찾아 오는데, 미모가 범상하지 않습니다.’ 물어본 사람이 ‘반드시 귀신이니 죽여야 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후에 부인에 찾아 왔는데, 들어오지 않고 문밖에서 멈췄습니다. 종요가 이유를 묻자 부인은 “공에게 살의가 있습니다.”라고 말했고, 종요는 “그런 거 없소’라고 부드럽게 말하여 부인은 방에 들어 왔습니다. 종요는 이상하게 생각이 드는 것을 참지 못하여, (부인의) 허벅지를 베어 상처를 주었습니다. 부인은 즉시 방을 나갔고, 나간 길을 따라 핏자국이 실처럼 이어져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사람을 시켜 발자취를 찾게 하니 큰 무덤에 이르렀고, 관 안에는 부인이 있었는데, 형체가 마치 살아 있는 사람 같았고, 하얀색 적삼에 붉게 물든 저고리와 바지를 보니, 왼쪽 허벅지에 상처가 있어서, 저고리와 바지가 피로 물든 것으로 보였습니다. 숙부인 청하태수가 얘기애 준 것으로, 청하 태수는 육운 입니다.

(지식이 부족하고 해석을 제멋대로 하여 표현이 틀릴 수 있습니다. 지적해 주시면 진심 감사하겠습니다.)

 

이 정도면, 귀신과 운우의 정을 나누는 전설의 고향급 얘기로는 거의 시조급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표현도 매우 고상하여, ‘밤마다 찾아오는 여인네가 있는데, 그 외모가 탁월합니다;;;’라니요…) 밤이 외로워 핸드폰을 붙들고 빨개진 눈으로 혼자 잠이 드는 저나 여러분에게는 그저 부러움의 대상일 뿐이지요.

문제될 만한 것은 이 대목이 정사에서 나오는 순서인데요, ‘문제(조조 3대 중 2대인 조비입니다.)가 제위에 오른 후 태위까지 승급이 되었다.’는 언급 이후에 이 이야기가 열전에 등장하는데, 만약 이 이야기가 태위 승급 이후의 이야기가 맞다면, 조비의 즉위인 220년 이 후 즉 종요님 나이로 70;;;에 가까운 나이에 있었던 이야기가 되어 버립니다. 물론 삼국지 위서의 인물 열전이 반드시 시대의 순을 따라 서술되지는 않았겠지만, 출신과 탄생을 기록의 맨 앞에, 사망을 가장 마지막에 서술하는 전기의 형식으로 되어 있으므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한창 나이 때보다는 훨씬 더 인생의 후반부에 ‘밤마다 찾아오는 미모의 귀부인과 조회를 참석하지 못할 정도로 므흣한 밤을 즐기셨던 것’이 아닐까 의심되는 점입니다.

열전의 순서에 따라 연배를 상상한 제 추측은 당연히 너무 심한 억측이자, 역사를 모르는 문외한의 재미를 위한 상상이 되겠습니다만, 조금 더 살펴서 따지고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3대인 조예 즉위 이후엔  화흠과 같이 무릎에 질병이 많아 절하고 서는 것에 문제가 있었으며 출근할 때도 가마나 수레를 탔다고 전기에 기술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즈음에 이 어르신은 둘째 아들인 종회의 탄생;;을 보셨거든요… (도대체 뭘 하셔서 무릎이 안 좋…게 되셨…) 70대 때 (정확히는 75세로 알려져 있습니다.) 에도 둘째를 보셨는데, 60대 중반이라면 더욱 그러하셨겠지요.

이는, 뭐랄까, 카사노바가 울고 갈 희대의 정력남이라고 해야할지… 어떤 면에서는, 특히나 작금 저출산의 현실에 반추해 보면 삼국지의 어떠한 영웅보다도 더욱 영웅(?)…스러운 모습이 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래서 뭐 어쨌냐고 반문하신다면, 이제 다 읽으신 것이니 마우스 스크롤을 위로 하시어 제목을 다시 한 번 봐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그렇지 않아도 덥고 짜증나는데, 안타깝게도 별로 재미가 없으셨다면 귀중한 당신의 시간을 뺏게 되어, 죄송하고 또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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