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은 누구의 공인가?

조선은 일본에 의해 강제로 합병되어 소멸한 왕조다. 그리고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추축국의 일원으로 영국, 미국, 프랑스 등의 연합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고, 그 결과 패전하게 되어 항복을 한다. 이로써 일본이 장악했던 많은 식민지들은 해방되게 된다.

이 해방의 날이 바로 1945815일이며 다른 말로 광복절이다. 일본의 입장에서야 패전일이겠지.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해방을 어떻게 얻게 된 것인가? 그냥 연합국이 일본을 때려잡아 줘서 공짜로 얼결에 얻었는가? 아니면 우리는 우리의 해방을 위해 자력으로 투쟁했는가? 그 투쟁의 결과 일본을 한반도에서 몰아낸 것인가?

어떤 일이거나 단순 명쾌한 것은 역사에 없다. 모든지 흐릿하게 섞여 있기 마련이다. 연합국의 승전이 일본 패망의 가장 큰 원인인 것은 맞다. 그러나 그 승전에 우리의 몫은 없었냐고 물어 본다면 그건 또 아니다. 분명히 우리의 투쟁도 있었다. 그 비율이 얼마가 되었건 상관없이 분명히 우리도 싸웠으니까 말이다.

그런 점에서 안희정 충남 도지사가 광복절을 “승리의 날”로 기념하자고 제안하는 것은 완전히 틀린 주장은 아니다또 어떤 나라라 할지라도 약간은 과장된 자화자찬을 하기 마련이다. 그게 꼭 틀린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과연 “승리의 날”을 자축할 자격이 있는지, 그러기 위해선 어떤 장애물을 극복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기로 하자.

 

무장독립투쟁사

일제시대의 초반에 있었던 대형 사건은 바로 청산리전투다. 19201021일부터 1026일까지 있었던 청산리 전투는 만주내 무장독립투쟁 세력을 제거하려던 일제의 의도를 무산시킬 정도로 강력한 파급효과를 가져온 “대첩”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 결과는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키게 된다.

좀더 광범위한 일제의 대응을 불러 왔기 때문이다. 일단 일제는 전투 패배 이후 간도 일대의 조선인 마을을 초토화시킨다. 1만명이 넘는 조선인이 학살당하고 3000가구 이상의 민가가 불에 타 버린다. 경신년 간도참변이다. 이런 작업은 그 이후로도 지속되어 만주에서는 끊임없이 조선인 난민이 발생하게 된다. 또 한편 일제는 중국 정부에 압력을 행사했고, 다수의 독립군들이 결국 만주를 떠나 러시아로 들어가게 된다.

이 때 러시아 스보보드니(자유시)에 집결하게 된 조선 독립군 세력은 대한독립군단이라는 이름으로 조직된 세력이었으며 총 병력 3500명 정도 되었다고 하는데, 이중 천명 가까이는 포위 사살되고 2000명 정도가 실종되거나 포로가 된다. 사실상 만주 지역 무장독립투쟁 세력이 궤멸된 사건으로 자유시 참변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청산리 전투 이후 만주에서는 무장독립 투쟁의 근거지를 잃게 되고 그 결과 오히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무장독립 투쟁 세력의 약화를 불러오게 된다. 사실상 한 번의 큰 승리였고 통쾌하긴 했겠지만 실질적인 전투력의 약화를 가져오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 이후 이렇다 할 무장독립 투쟁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어 버린다.

하지만 무장독립 투쟁의 맥은 결코 끊어지지 않았다.

이 부분, 자료를 찾기도 힘들고 흐름을 연결해 역사적 맥락을 재구성하기도 무척 힘들다. 공백도 너무 많고 앞뒤 사건을 연결해 줄 고리들도 다 사라져 버렸다. 마치 진화생물학에서의 “미싱 링크” 처럼 말이다.

(언제가 되었건 이 부분에 대해서는 체계적인 자료수집을 통해 완결된 하나의 역사적 맥락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는 중이고 내가 늙어 죽기 전에 가능할지 의심되지만 틈나는 대로 지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2015년 광복절을 맞이하여 밝혀둔다. 자료 제공 등 도움을 주실 분들의 연락도 기다린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혼미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분명히 눈에 띄는 사실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해하기 힘든 숫자들이다.

대략 일제 초기의 무장독립 투쟁 세력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와해되고 무장해제 당하는 등 시간의 흐름 속에서 소멸되어 갔지만, 일제의 한반도 지배는 가혹했고, 만주에서의 활동 역시 비인간적인 압제였던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되면 저항의 동력은 대를 이어 강화되기 마련이다.

그 결과 지속적으로 새로운 세대가 무장 투쟁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 새로운 세대들은 동북항일연군 등을 거치면서 계속 갈라지고 통합하기를 반복하게 된다. 일부는 임정 계열의 광복군 세력으로, 일부는 마오의 팔로군에 포함되어 있던 조선인 부대로, 일부는 소련으로 넘어가 국제 홍군 88여단 세력으로 갈라지게 된다.

이해하기 힘든 숫자”는 바로 여기에서 등장하게 된다. 이렇게 동북항일연군으로 뭉쳤던 새로운 세대의 무장투쟁가들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동북항일연군만 해도 전성기때 만단위의 병력이 있었다. 거기다가 만주 지역에서는 일제가 세운 괴뢰정부인 만주국이 활동을 하면서 끊임없이 해당 지역의 조선인들을 괴롭히고 있었고 그들의 자녀들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전투원으로 참전하게 된다.

자유시 참변에서 희생된 앞세대 무장투쟁가들의 단위가 수천에 머무르는 것에 비해 그 이후 만주에 발호한 수도없이 많은 무장독립투쟁 군벌들, 그리고 팔로군이 지속적으로 만주를 돌며 새로 받아들인 수많은 병력들, 소련으로 넘어가 무장 공산혁명을 위해 싸우던 병력들을 모두 합치면 수만명이 넘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참고로 45년 당시 팔로군 소속 병력은 대략 98만에 이른다. 그 중에 조선인 부대는 얼마나 있었을까?

팔로군에는 독립단이라는 예하 부대의 성격으로 조선인들만 모아 놓은 부대가 활동을 하고 있었고 그들은 동북항일연군 출신을 주축으로 새로 모집된 병사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1947년 당시 기록에는 팔로군내에 린뱌오가 지휘하던 동북민주연군 내 정규군(이 부대는 차후 중공 제4야전군, 즉 중국의 정부군이 된다.)중에는 약 12만명의 조선인이 있었다고 나와 있다. 여기에 팔로군 휘하 각 부대에 있는 조선인을 모두 합치면 약 25만여명의 병력이 있었다고 한다. 25만명이라면 정말로 놀라운 수치가 아닌가? 

이들 팔로군 소속 조선인 부대들은 국공내전 과정에서 매우 살벌하고 무서운 전공을 많이 세운다. 그들을 지배하는 주된 정서는 (심지어 조선 독립 보다 더 무겁게..) 일제에 대한 적개심이었던 걸로 보인다. 그리고 이들은 차후 일제의 패망 이후 북으로 건너가 연안파를 구성하여 북한의 인민군 창설의 주축이 되며, 일부는 잔류했다가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참전 상황에서 대거 한반도에 진격하는 주력 부대를 구성하게 된다.

그러나 동북항일연군 시절부터 갈라져 나와 임정에 합류한 김원봉 등과 함께한 병력은 얼마나 될까? 나중에 광복군이라는 이름으로 창설된 부대의 창설 병력은 30명이다. 19454, 즉 해방 4개월 전의 임정의 문서에 의하면 당시 광복군의 총 병력수는 339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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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군 시절의 김준엽(가운데)과 장준하(오른쪽)>

 

이들이 미국 OSS와 협조하에 훈련도 받고, 국내정진군을 편성하여 한반도 진공을 계획하기도 한 것이다. 45년 해방 이후 우여곡절 끝에 광복군 대원들은 개인 자격으로 귀국(이 또한 얼마나 처참한 일인지..)하게 되는데 이 때 홍보한 대원수는 20만이다. 불과 몇개월전에 몇백명이던 광복군이 아무리 홍보용 과장이라고 해도 20만이 넘게된 사유는 뭘까패망한 일본군 내의 조선인 학도병이나, 혹은 박정희 the 다카키 마사오 같은 변절자들이 대거 광복군에 합류해서 귀국을 하게 된 것 뿐이다.

비교해 보자. 같은 무장독립 투쟁 세력에서 출발하여 대표적인 중기 무장 투쟁세력인 동북항일연군에 뭉쳤다가 다시 갈라져 최종적으로 광복군에 몇 백명, 그리고 팔로군 휘하 조선인 부대에 20만 이상, 그리고 소련 산하 88여단에 있던 약간 명.

일본 제국주의의 관동군, 만주군, 간도 특설대를 상대로 싸워 전공을 세운 자들은 과연 누구일까? 연합군의 승리에 일조하고 조선의 해방을 가져온 공로는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 만주에서의 일본의 진격을 실질적으로 막아낸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만약 광복절을 “승리의 날”로 규정하고 자축하고자 한다면 그 권리는 누구에게 있을까?

과연 실질적인 일제 후반의 무장독립투쟁사는 누구의 것일까?

 

승리는 누구의 것인가?

광복이 우리의 승리인지 아직 확신할 수 없다. 결과적인 승리이기는 하지만 그 승리의 기원이 된 공로는 누가 세웠는가 하는 것이다. 당연히 최고의 몫은 연합군이 갖는 것이 맞다. 특히 한반도에서 일제에게 얻어낸 승리의 주역은 미국과 소련이다.

그렇지만 한반도의 주인이었던 우리라고 해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일제는 중국을 지배하고 싶어했고, 만주를 장악했으며 만주국이라는 괴뢰정부를 세워 꼭두각시 노릇을 하게 만들고 일본육사 출신의 장교들, 박정희 같은 자들을 만주군에 배치했다.

그런데 만약 일본이 중국의 국공합작에도 불구하고 승리하여 중국 본토를 점령해 버렸더라면 과연 이차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날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일본의 중국지배를 막아낸 승리자, 중공(현 중화인민공화국)의 정규군이었던 팔로군 역시 일제를 상대로 한 승리의 공로에서 연합국에 결코 뒤지지 않는 공헌을 한 셈이다.

그리고 그 팔로군이 일제를 상대로 거둔 승리의 상당 부분은 팔로군 내 조선인 부대들, 일본군이라면 피도 눈물도 없이 야차같이 가혹하게 죽여 버려 같은 팔로군 소속 중국병사들에게조차 공포의 대상이 되고, 힘들고 불리한 여건의 전투에서는 항상 선봉에 서던 바로 그 조선인들의 공로일 것이다.

일제의 가혹한 만주 지배의 여파로 집을 잃고 가족을 잃고 인생을 잃고 일제에 대한 증오의 화신이 되어 야차같이 싸우던 그 조선인 팔로군들은 분명히 광복의 그날이 승리로 기록될 때 상당히 앞 부분에 기록되어야 할 사람들이라는 점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그 빈약했던 광복군 출신들 조차 해방 이후 남한의 군대에서는 별다른 대접을 못 받고 오히려 백선엽 같은 독립군 쏴죽이던 간도 특설대 출신의 일본군 장교들에게 밀려 축출되기에 이른다.

우파 좌파, 무장 투쟁가, 정치 투쟁가, 외교 투쟁가를 막론하고 독립운동가들은 정권을 차지한 친일파에서 친미반공주의자로 변신한 모리배들에 의해 외면당하고 버림받고 생계를 위협받는 구차한 생활 속에서 쓸쓸히 죽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 사회에서 광복절을 “승리의 날”로 기록하고 축하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먼저 해결해야 하는 걸까?

단 한 줄의 질문으로 축약할 수 있겠다.

“우리 사회는 좌파 무장독립 투쟁가들의 공로를 인정할 수 있겠는가?”

좌파건 우파건 독립운동가 자체를 매장시키는 사회에서 너무 나간 질문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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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광복은 누구의 공인가?

  1. 새누리에서 을 보고 만세를 부르는 괴상한 짓을 저지르긴(?) 했지만 일시적인 것에 불과할 거고… 통일 후에나 가능하겠지만 그 통일 자체가 요원하니 무리겠죠. 통일을 지향할 수 있는 힘을 만들 수 있도록 활용한다면 도움이 되겠지만 뉴라이트에 둘러싸인 박근혜에게 통일은 그저 대박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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