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독립 만세?

최근 영화 암살이 흥행 대박을 치며 온갖 화제를 몰고 다니고 있다. 상업적 성공을 떠나서 한국 대중 문화에서 건드리기 힘들어하던 부분을 과감하게 다룬 점은 정말 높게 평가 받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요 근래 본 한국 영화 중 여성 캐릭터를 너무나 멋지게 다뤄 준 점이 가장 좋았다. TV 예능에서 여성이 씨가 말라 간다는 말을 종종 하지만, 내가 보기엔 영화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초주의의 절정으로 불리던 매드맥스 시리즈에서도 여성 캐릭터의  발전이 드러나는 시대에 한국 매체는 오히려 퇴행하는게 아닌가 싶을 만큼 여성을 무식하게 다뤄 왔는데 암살은 그것들을 한방에 날려버렸다 싶을 정도였다.

이미 천만 관객이 넘은 영화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어찌 보면 위험하다. 글 좀 쓴다는 사람들은 죄다 달려들어 한 마디 하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필연적으로 글 내용이 겹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는 내내 가장 큰 찝찝함과 의문이 있기에 글로 남겨둔다. (명확하고 깔끔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해야겠으나 이번 글은 정보 전달이라기보다는 도통 머리 속에서 해결이 안되는 질문에 가깝다는 전제를 깔고 시작하겠다. 잘 모르겠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배움의 시작이 아니던가)

최동훈 감독은 워낙 대사 한마디 한마디를 잘 살리는 감독이라 이번 영화에서도 명대사를 많이 남겼다. 신흥무관학교, 김원봉 등등 한마디만 들어도 울컥할 만한 말들. 그중 하나가 대한 독립 만세다. 도통 웃을 일이 잘 없고, 웃는 게 어색할 지경인 사람들을 그나마 웃게 만든 그 한마디. 덕분에 초반부터 울면서 영화를 봤다. 아마 이 여섯 글자를 이토록 짠하게 표현한 매체도 드물지 않을까 싶을 만큼 멋진 장면이었다.

그런데 대체 왜 ‘대한 독립 만세’인가. 독립 운동 하면, 3.1 운동 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그 말. 반복 학습으로 이미지가 굳어졌지만 대체 왜 ‘조선 독립 만세’가 아니라 ‘대한 독립 만세’인지는 설명이 잘 안된다.

대한민국은 48년에 정식으로 수립됐다. 물론 헌법에 명시한 대로 임시정부를 계승하기에 건국절을 주장하는 이들이 욕을 바가지로 먹는다. 줄여서 임정이라고 부르지만 정식 명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다. 하지만 3.1 운동때도 대한독립만세가 있었지 않은가? 임시정부는 3.1운동 이후에 만들어졌고.

대체 ‘대한’은 언제부터 쓰이기 시작한 말일까?

시작은 대한제국이다. 고종이 국호를 바꾸면서 대한제국이라는 이름을 썼다. 그런데 정말 존재감이 없다. 나도 이 글을 쓰면서 간신히 기억이 났다. 아마도 우리 역사에 가장 존재감없는 나라가 대한제국 아닐까. 굳이 찾자면 중국 전한과 후한 사이의 신나라 정도의 존재감일 것이다. 왜냐고? 힘 없는 제국. 이 얼마나 허탈한 개념인가. 대한민국 교육 과정을 거친 내 머리 속에서 생각나는 건 ‘조선이 망했다’ 수준이지 대한제국이 망했다는 생각은 아무리 머리를 쥐어 짜도 참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다(대한제국 만큼이나 한국인의 머리 속에서 존재감이 없지만 나라의 운명을 결정지은, 그럼에도 교과서에 참 안 나오는 시기가 하나 더 있다. 미군정 시기다)

이런 저런 기록을 조사하다보면 문서나 기록, 운동가들의 흔적에서는 대한독립만세라는 말이 참 자주 나오지만, 오히려 당시 백성, 일반 민중들은 조선독립만세를 말한 경우가 더 많지 않았을까. 역사책에는 일제 강점기, 일제 식민시대 같은 말을 쓰지만 그 시대를 겪은 내  할머니가 그때를 애정(왜정, 왜놈정권을 이렇게 발음하시는데 경상도 특유의 악센트를 적용하면 참 찰지게 들린다)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나라 이름 하나 정하는 데에도 엄청난 갈등과 혼란이 계속됐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내용은 절대 학교 시험에 나오지 않는다. 독립 운동은 신성하고 순결한 것이어야 하는데 ‘대한’ 그 두 글자의 역사만 추적해도 똥물과 피가 쉴 새 없이 튀는 아수라장으로 들어가게 되니까. 청산리 대첩은 나와도 자유시 참변은 안 나오고,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나와도 신채호의 ‘이완용은 있는 나라나 팔아먹었지 이승만은 있지도 않은 나라를 팔아먹는다’는 사자후는 나오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우리는 나라 이름을 말할 때 가장 친숙한 이름으로 한국을 말하면서 국가대표팀 스포츠 경기만 있었다 하면 점수 표시에 대한민국이 떡하니 박힌 모습을 자주 본다. 2002년 월드컵 이후로.

아마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도 이런 부분을 감안했을 것이다. 정말 절묘하게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이는 선까지만 다가가고 멈췄으리라. 상업적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이 만큼이나마 역사에 가깝게 다가간 점에 대해 찬사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암살 대한독립만세’라고 검색을 하고 공부를 시작해보려 하면 5초만에 기가 막히면서 힘이 빠진다. 대사가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었는지 같은 분석이나 제안은 없고 김무성으로 도배가 되기 때문이다. 통탄할 노릇이다. 여러가지 의미로.

절대 쉬울 리는 없겠지만 훌륭한 역덕의 교통정리를 요청한다. 대한민국 수립 이전까지 ‘대한’은 대체 어떤 의미였는가. 차세대 애국가로 밀고 싶은 노래인 독립군가 가사의 시작은 왜 ‘신대한국’으로 시작하는가. 정말 3.1 운동 때는 온 국민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친 게 맞는 것인가.

다시 한번 떡밥만 던지고 도망가는 것에 대해 독자 여러분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ㅜ.ㅜ







1 thought on “대한 독립 만세?

  1. 전한 후한 사이에 신나라가 있었다는 건 처음 알았군요. 너무 신나서 망했나…
    대한제국이란 이름은 순종 때 일본이 강제로 조선으로 되바꾸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래도 사람들은 조선을 더 친숙하게 받아들였고 지금도 “조선놈은 이래서 안 된다.”는 명언(?)을 아무렇지 않게 쓰고 있는데 임시정부가 세워지기도 전에 대한독립 만세라… -_-a 광복 후 어지러웠던 정국에서 조선 왕조 후손들이 되돌아 오는 걸 탐탁치 않아했던 이승만 때문이려나요?(하지만 그 노친네도 양녕대군 후손인 걸 내세웠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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