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에 대한 평가

사람이 사람을 평가할 수가 있을까? 이건 예의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다. 사람의 지성으로는 사람을 평가하기 힘들다. 과연 그럴까? 왜 그럴까?

먼저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사람은 어떤 식으로 판단을 하고,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 것인가를 “예측”하는 것이 평가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저 사람은 과거 매일 아침 일곱시에 일어났으니 내일도 아침 일곱시에 일어날 것이라는 수준에 불과하다. 또는 그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는 거짓말을 자주 하니까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오면 또 거짓말을 할 것이라고 평가를 하게 된다. 그러나 그건 전적으로 그 사람의 마음이다.

사람은 언제나 변하기 마련이다. 자다가 문득 무언가를 깨닫고 바뀌기도 하고, 어느날 갑자기 술을 끊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사람의 과거 언행을 기준으로 그 사람의 미래를 예측하는 “평가”는 언제나 틀릴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불확실한 예언에 불과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래서 사람의 지성으로는 사람을 평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살면서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평가를 한다. 또 평가는 어떤 조직에서건 필수적인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평가의 대부분은 그 사람의 지난 언행에 대한 평가에 그치기 마련이다. 그걸로 그 사람의 미래의 행동을 예측하는 것은 다분히 확률적인 일이 되어 버린다.

우리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 대한 평가를 꽤 많이 한다. 그러나 그 평가는 대부분 그 사람이 행했던 과거의 행동에 근거하여 그 사람의 미래의 판단과 행동을 예측하는 자의적이고 확률적인 추측에 불과하다는 것, 이것이 하고 싶은 얘기였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이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정치인에 대한 평가

근본적으로 정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우리 사회 공동체에서 필요한 의사결정을 몇 몇 선발된 사람들에게 위임하고, 그들이 우리의 이익을 대변해서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바를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과연 어떤 사람에게 그 결정권을 위임해야 하냐는 질문이다.

우리가 모아준 권력을 가지고 우리 모두의 이익을 위해 현명하게 판단할 사람을 선발해서 권력을 위임하는 것이 옳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그는 우리의 도구일 뿐이다. 물론 훌륭한 정치인에게는 명예가 주어진다. 우리를 대신해 우리가 했어야 하는 어려운 결정들을 내려준 사람이니 명예 뿐 아니라 꽤 많은 보수도 챙겨주게 된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가 우리의 이익을 배신하는 판단을 내리게 되면 그의 명예는 땅에 처박히고 그에게 주어졌던 권력은 회수되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물론 그렇게 정상적으로 권력이 운용되기는 무척 힘들긴 하지만 그게 원론적인 얘기라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런 위험한 권력 위임을 과연 누구에게 해야 하냐는 고민을 해 봐야 한다. , 수많은 정치인들 중에 우리의 판단을 통해 그 거대한 권력을 가장 잘 사용할 사람을 선발하여 위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은 한마디로 표현해서 “정치인에 대한 평가”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얘기했듯이 언제나 틀릴 수 있는 불확실한 예측에 불과한 평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비록 불확실하더라도 평가도 하지 않은채 권력을 맡길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다수결에 의한 투표가 아니라 “제비뽑기”로 권력자를 선출한 경험이 있긴 하지만 그건 그다지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니 말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정치인에 대한 불확실한 평가를 하게 되고, 그 평가에 따라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고르게 되는 것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평가를 포기하는 사람들

다시 말하지만 어떤 사람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과거 행적, 언행등이 필요하다. 이거 아주 기초적인 데이터이지만 그런 데이터가 대중에게 쉽게 전파되지 않는다. 정치인도 너무 많고, 그 많은 정치인들의 개인적인 행적까지 대중이 모두 알아야 한다는 것은 정말로 피곤한 일이다.

어찌어찌해서 그런 데이터를 모았다고 치자. 그 데이터를 분석해서 그 정치인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과정 역시도 무척이나 험난하다. 사람의 어떤 행동은 매우 다양한 원인에 의해 유발되며 어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했을때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인하는 작업은 매우 힘든 작업이다. 언행 역시 마찬가지다. 정치적인 레토릭들은 그게 거짓인지 참인지 구분하기도 무척 힘들다. 이게 사실을 표현하는 것인지 무의미한 감성적 언사인지 구분하기도 어렵다.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 수많은 데이터를 조합해 한 사람의 정치인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고 해서 그가 앞으로 어떤 판단을 하고 어떤 언행을 하게 될지 예측하는 것도 매우 힘들어진다. 그저 확률적인 추정이나 가능할 것인데, 거기에 정파적 이익이 개입된다면 사실 관계는 더욱 더 혼미해진다.

그러다보니 결국 평가 자체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복잡한 합리적 평가 대신에 믿음이라는 것을 주어들기 시작한다.

사실 정치인의 입장에서는 매 사안별로 자신의 반응을 모아 냉정하게 평가하는 유권자들이 제일 두렵다. 반대로 그런 평가 없이 그저 자신을 믿고 따라주는 유권자들은 고맙기 그지 없다. 그래서 정치인은 언제나 감성적이고 무의미한 레토릭을 구사하며 사람들의 평가가 아닌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 그게 남는 장사니까 말이다.

그렇게 합당한 평가 대신 “신뢰”를 얻어 권력을 획득한 정치인들은 거의 언제나 유권자를 배신한다고 역사는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1933:  Adolf Hitler (1889 - 1945), chancellor of Germany, is welcomed by supporters at Nuremberg.  (Photo by Hulton Archive/Getty Images)
1933: Adolf Hitler (1889 – 1945), chancellor of Germany, is welcomed by supporters at Nuremberg. (Photo by Hulton Archive/Getty Images)

 

한창 때의 히틀러만큼 대다수 독일인들의 신뢰를 얻었던 정치인이 또 있을까? 북한의 김일성은 북한 인민들에게는 신적인 존재였다. 소련의 스탈린은 또 어떠했나? 박정희는 암살당했을 당시 엄청난 숫자의 노인들이 상복을 입고 길거리에 나와 통곡을 했었다.

유권자 대중이 정치인에 대한 냉정한 판단을 포기하고 무조건적인 믿음을 주는 순간, 권력자는 언제나 대중을 배신하기 마련이다.

박근혜가 불쌍하다며 표를 던진 유권자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노인예산, 육아예산, 저소득층 지원 예산의 대폭 감소였던 것만 봐도 너무나 당연한 소리 아닐까?

믿음은 아름다워 보인다. 하지만 최소한 정치에 있어서 무조건적인 믿음이라는 것은 권력의 부패를 촉진하는 마약에 불과하게 된다.

무엇을 믿을 것인가

사람을 믿지 말고 언행을 믿어야 한다. 저 사람은 의례히 이럴 것이라고 추정하지 말고 그 사람이 이번 사안에 관련해서 반응한 말과 행동을 분석해야 한다.

정치인에 대해서는 특히 그렇다. 내가 그를 지지하고 안하고 여부는 잠시 잊어야 한다.

어떤 사안이 발생했을 때, 그 정치인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제3자적 관점에서 지켜보고 냉정하게 평가를 해야 한다. 거기에 호불호의 감정이나 기존의 믿음이 개입하는 순간 판단력은 흐려질게 뻔하니 절대 개입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 정치인은 왜 이렇게 반응했는지 사정을 확인해 보고, 어떤 맥락의 판단을 내리고 있는건지 추정해 봐야 한다. 이게 정치판을 지켜보는 유권자들의 기본적인 자세가 된다.

누군가가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비난한다면 왜 비난하는지 확실하게 이해하고 그 비난이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른 비난인지, 정치적 스탠스의 차이에 따른 사상적 비난인지, 아니면 이 정치인의 일관성 부족을 질타하는 비난인지 구분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 평가와 판단은 절대 일회성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이번에 잘했으니 다음에 또 잘할 거라는 기대만큼 배신당하기 쉬운 믿음은 없다. 다시 말하지만 사람은 언제나 변한다는 사실을 잊으면 절대 안된다.

그렇게 지켜보다 보면 어떤 정치인은 일관성이 있고 어떤 정치인은 쉽게 말을 바꾸며 어떤 정치인은 합리적으로 일을 해결하려 하고 어떤 정치인은 독선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게 된다. 그런 판단 조차도 스스로 내려야 한다. 세상에는 당신을 속여 이익을 꾀하는 사기꾼 평론가들이 드글거린다.

제한된 정보만 얻을 수 있는 유권자들의 입장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그러한 판단들, 냉정하고 객관적인 자세를 견지하면서 스스로 얻어낸 “평가 결과의 누적” 뿐이다.

어떤 때에는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이라도 내 마음에 안드는 언행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마이너스 1. 내가 원하는 그대로의 주장을 가장 합리적인 형태로 표출하는 경우도 있다. 플러스 10. 그저 그런, 달지도 쓰지도 않은 불성실한 반응을 했다. 0. 내가 지지한 정치인이 부패에 관련된 범죄를 저질렀다. 마이너스 50.

이런 식으로 채점을 하면 된다. 그리고 최종적인 평가는 바로 그렇게 누적시켜온 성적표를 들고 기표소에 들어가서 하면 되는 거다.

우리가 믿을 것은 이렇게 스스로 매번 작성해 둔 성적표이지, 정치인 개인이 절대 아니다.

그나마 행동에 대한 평가의 기록은 확률적 정확성이라도 가지고 있지, 자연인 개인은 예측 불가의 생물체라는 점 잊지 말아야 한다.

뱀발 :

누군가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을 비난하는 것을 발견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가장 먼저 할 일은 그가 이 정치인 자체를 비난하는 건지, 아니면 그 정치인의 행동을 비판하는 건지를 구분해야 한다. 이 정치인 자체를 비난하는 거라면 그는 “무조건적인 믿음”과 쌍둥이 같은 존재인 “무조건적인 증오”를 가진 사람이니 신경쓸 것 없다. 앞으로 그 비난의 주체가 얘기하는 정치적인 이야기를 무시하고 흘려 버리는 걸로 충분하다.

이 정치인의 행동을 비난하는 거라면 그가 왜 비난을 하는지, 그의 비난은 합리적인지를 알아보면 된다. 그리고 내 성적표에 반영을 하면 된다. 그의 비난이 불합리하다면 무시해도 되고 합리적이라면 그 정치인의 성적표에 마이너스 점수를 주면 된다.

제일 바보 같은 짓은..

정치인의 언행에 대한 비판을 정치인 자체, 개인에 대한 비난으로 알아듣고 나의 순수한 믿음, 팬심이 모욕당한 것처럼 분노를 표출하고 길길이 뛰며 반응하는 것이다.

이런 행동은 내가 정치적 바보임을 만천하에 알리는 짓이다. 하고 싶으면 해도 되지만, 가급적 하지 말길 권한다. 최소한 공익을 위해 당신 같은 사람은 정치에 관심 끊어주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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