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션과 우주 영화의 새로운 유행.

*스포일러 없이 영화 정말 끝내준다는 소개를 쓰고 싶었으나 글빨 부족으로 포기했다. 영화 내용을 미리 알기 싫으신 분들은 냅다 글을 닫아주시라.

좌우지간 우주에 대한 관심이 많이 시들해진 시대인 건 확실해보인다. 우주를 소재로 하는 일반인 대상 영화들이 변하는 모습을 보며 든 생각이다. 사실 SF 같은 곳에서야 상상력의 날개를 맘껏 펴면서 온갖 작품이 다 나왔지만, 뭐니뭐니해도 우주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미소 냉전시기 군사적 이용에 대한 불안감, 거기서 우세를 차지하기 위한 군비경쟁과 우주 경쟁이 한몸이었다. 스푸트니크부터 시작해서 라이카, 달착륙 등등이 그 경쟁의 결과물이다. 여기서 냉전이 시들해지자 외계인이 히트를 치기 시작하고, 우주물에 대한 변화가 조금씩 나타난다.

그런데, 이제는 외계인조차도 시들해진다. 차라리 잘 모를때는 태양계 어딘가에 외계인이 있을것같고, 금방이라도 우주에서 누군가 찾아올 것 같은 기분이 막 들다가도 그것조차 시들해진 것이다. 기술은 주구장창 발전하고 우주의 크기를 재니, 멀고 먼 다른 별까지 찾니 어쩌니 해도 살아있는 생물 하나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니 ‘거 뭐 밤하늘 멀리 쳐다보면서 가봤자 돌덩이밖에 없네(가스형 행성 안습 ㅠ.ㅠ)’수준으로 우주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떨어진 것이다. 어디까지나 ‘일반 대중의 인식선’상의 이야기지만 문제는 돈은 이사람들한테서 나온다는 점. 특히나 영화같은 대중 매체의 경우 그 일반 대중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거금을 들이고도 망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럼 어떻게 일반 관객을 사로잡을 것인가.

이젠 우주 자체에 대한 신비감도, 외계인도 안먹힌다. 그래서 ‘사람’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집나가면 개고생’ 공식을 이어간다.

그래비티는 뭐 멀리 나가지도 않는다. 그냥 인공위성 궤도 위에서 한번 삐끗하는 바람에 죽을 고생하고 지구로 돌아오는 이야기. 어떻게든 지구로 돌아가야 한다. 중력에 몸을 맡기고 싶다.

인터스텔라는 지구 망해가는 와중에 우리 이제 어떻게 사냐, 우주로라도 나가야 한다고 하는 영화다. 역시 인간의 생존 문제를 다룬다.

마션은 철저하게 이 구도를 따른다. 우주에 가서 뭘 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사람이 중요한 것이다. 배경으로서 우주가 존재하지만 인간이 한없이 작아지는 곳이라는 보조적 역할을 하지 화성 자체가 주인공이 아닌 셈이다. 심지어 화성에서 패스파인더를 발견하는 장면을 보라. 항상 우주는 전인미답의 영역, 미지의 세계로 표시되던 것을 넘어 이제는 무려 인류의 흔적이 남은 우주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걸로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이 살아난다.

미국 얘기할 때 자주 나오는 말이 있다. 프론티어다. 주로 개척정신으로 번역되지만 실상은 이미 살던 사람들이 무참히 죽어나가던, 피냄새 물씬 풍기는 단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 의식속에 상당한 자리를 차지하는 말이다. 당신을 막는 난관에 굴복하지 말고 조상들처럼 굳건히 앞으로 나아가라는 느낌. 요즘은 지구촌이라는 말도 촌스러울 지경이라 주로 레포츠 쪽에서 많이 쓰는 말이지 싶은데, 우주야말로 프론티어의 새로운 영역이었다. 인간은 굳건하고 강인하며, 너희들이 상상치도 못한 곳이라도 인간이 가지 못할곳은 없다는 걸 보여주기에 가장 좋지 않은가(인터스텔라는 새로운 프론티어의 대표작으로 보인다). 하지만 마션은 프론티어와는 전혀 관계없이 사람 목숨 살리기에 집중한다. 우주판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고 하면 영화 줄거리가 ‘화성인’ 중심이라 핀트가 좀 안맞지만 전체 판세가 돌아가는 모습은 거의 똑같다(그리고 맷 데이먼은 또 미국민 세금으로 구조를 받는다는 점에서 헐리우드의 피치 공주로 거듭나고 있다).

감히 ‘사람을 향하는 프론티어’라고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 하지만 미국이라면 충분히 그정도의 방향 전환을 이뤄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예전에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볼때는 ‘도대체 새롭지도 않은 이야기로 뭘 저렇게 구구절절 이야기를 끌어가나. 자국민 구하는 게 나라의 당연한 의무 아닌가’ 생각을 하면서 이야기가 너무 늘어지고 지겹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니더라. 어떤 나라는 배가 뒤집혀 수많은 사람이 죽네 사네 하는데도 구조가 제대로 됐는지, 책임은 누가 지는지, 이 오랜 시간이 지나고도 실종자는 어디로 갔는지 다 파악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

이런 나라가 우주에 자국민 1명이 고립돼 있다고 생각해보자. 제아무리 영화속 천재 과학자같은 양반이 구조 계획을 들이민다 해도 죽어도 통과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대사와 함께. ‘당신이 책임질꺼야?!’

영화에서는 ‘내가 책임지겠다’라는 말은 자주 나왔어도 ‘당신이 책임질꺼야?!’같은 말은 안나왔던 것으로 안다. 책임자가 심사숙고 끝에 ‘내가 책임지겠다’고 말하는 나라는 흥할 것이다. 맡은 역할에 충실하니까. 하지만 ‘당신이 책임질꺼야?!’라는 말이 허구한 날 나오는 나라라면 망하지 않은 것을 신기하게 여겨야 한다. 이런게 국격이다.

영화를 보면서 수도 없이 많은 짜릿한 장면들이 있었지만 가장 신났던 것은 수많은 ‘공돌이들’, ‘nerd들’이 심각한 문제를 마주했을때 자신들의 똘끼(와 쌍코피 터질 철야)로 그 문제를 해결하는 장면이었다. 영화 아폴로13에서 단 한장면 등장했을 때는 수많은 최루성 드라마 속에 빛나는 하나의 장면으로 인상깊게 남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그 모습이 줄줄이 쏟아져나오고, 그와 동시에 고전적인 모험적 시도까지 섞여서 영화 보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다는 점이 너무 좋았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이뤄지려면 앞에서 말한 내용을 다시 말해야한다. ‘당신이 책임질꺼야?!’같은 말이 세상을 뒤덮고 있으면 이런 시도들은 아예 나오지 않는 법이다. 머리를 쥐어뜯고, 줄담배를 태우고, 몸 속 카페인 농도를 올려가며 몸을 좀비처럼 굴리고, 다이어트도 포기한채 당분을 위장에 쌔려 박아가며 고민해서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뭐하나. 권한도 없이 책임만 떠안게 되는데. 자리 보전하고 복지부동이나 하면 그만이다.

기술자들의 창의성, 자국민 구출을 위해서라면 경쟁국가와도 손을 잡는 필사적 노력, 권한을 가진 책임자들의 넘쳐나는 책임감, 마치 태어날때부터 온 국민이 뼈에 새기고 태어난듯한 모험심.

나는 마션을 ‘가장 미국적인 국뽕 영화’라고 부르고 싶다.

그리고 그런 국뽕이라면 좀 만성적 장기 중독이 되어도 괜찮지 싶다. 미국이라면 꺼뻑 죽는 어떤 나라가 좀 보고 배울 수 있게 그 국뽕에 제발 만성적 장기 중독이 되길 바란다. 미국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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