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됨을 포기하라

인간됨을 포기하라

 

 

새누리당의 저출산ㆍ고령화 대책

 

지난 21일, 새누리당과 정부가 국회에서 제3차 저출산ㆍ고령사회 기본계획 관련 당정협의회를 열었다. 새누리당 측에서는 원유철 원내대표와 김정훈 정책위의장이 참석했고, 정부 측에서는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가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저출산의 근본적인 대책으로 언급된 것은 학제 개편이었다. 새누리당 김정훈 정책위의장은 “기존 틀에 갇혀 있으면 더 이상 저출산 고령사회 문제 극복이 어렵다”며, “필요하다면 처음부터 제도를 다시 설계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면서 학제 개편의 뜻을 밝혔다.

당정의 주장은 간단했다. 저출산을 심화시키는 이유는 결혼 연령이 늦어지는 것과 관계가 있다. 실제로 25세 미만에 결혼한 여성들은 평균 2.03명의 아이를 낳은 반면, 35세 이상에 결혼한 여성들은 평균 0.84명의 아이를 낳았다. 결혼 연령이 늦어지는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당정은 주된 이유로 청년들의 늦어지는 사회생활 시작을 꼽았다.

결국 청년들의 늦은 사회진출이 늦은 결혼으로 이어지고, 저출산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당정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제 개편’이라는 상당히 거대한 담론을 꺼내들었다.

현재 우리나라 학제는 모두 알다시피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 학제를 개편해 초등학교를 5년제로 바꾸고, 중ㆍ고등학교 6년제를 5년제로 바꾸겠다는 것이 당정의 의견이다. 현재 12년의 초중등 과정을 10년으로 단축하겠다는 것이다.

당정은 대학에 대해서도 손을 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소모적인 스펙 쌓기를 방지하기 위해 대학 전공을 구조조정하겠다고 밝혔고, 현행 4학년인 대학교 제도 역시 구조조정을 통해 전공별로 3년제ㆍ4년제로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김정훈 정책위의장은 “지난 10년 간 무상보육, 육아휴직, 육아기 탄력근무제 등 일ㆍ가정 양립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지만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다”며 “발상의 전환을 통해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학제 개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원유철 김정훈 당정협의회

▲ 당정협의회에 참석한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와 김정훈 정책위의장.

 

 

‘헬조선’과 ‘9포 세대’

 

이제는 거의 유행조차 지나버린 말인 ‘헬조선’이라는 말이 있다. 불평등한 한국 사회를 지옥에 빗댄 말이다. 비슷한 종류의 신조어로 ‘3포 세대’라는 말이 있다.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라는 말이다. 여기에 ‘취업’과 ‘집’을 더해 ‘5포 세대’라고 칭하기도 하고, ‘인간관계’와 ‘희망’을 더해 ‘7포 세대’라고 칭하기도 한다. 여기에 ‘건강’과 ‘외모’까지 더해 9포 세대라 칭하는 경우도 있다.

당정은 출산율 저하의 원인을 청년들의 사회생활 시작이 늦어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청년들의 사회생활 시작이 늦어지는 것일까. 정부에게는 그 원인을 찾아내 제거할 책임이 있다.

어째서 청년들은 이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했을까. ‘포기’는 결코 선택지가 아니다. 청년들은 포기를 선택하지 않았다. 연애를 포기하고 싶고, 건강을 포기하고 싶고, 희망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청년들은 포기를 강요받았다.

무엇이 이들의 포기를 강요했을까. 낮아지는 월급, 높아지는 물가. 최저임금으로 생활하기는 턱도 없이 부족하다.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어 취직은 더 어려워진다. 결국 잡는 일자리는 비정규직이다. 2년 뒤에는 해고당해야 하는 시한부 인생이다. 저임금으로 얼마든지 교체당할 수 있는 노동자가 된 청년들, ‘이케아 세대’라는 말까지 나왔다.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원하는 공부가 아니라 기업이 원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 토익 점수가 인생의 성적표가 되고, 대학의 서열의 삶의 서열이 된다. 대학교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고시반을 만든다. 그러면서도 수백만 원에 달하는 등록금은 낮아지지 않는다. ‘기승전 치킨집’이 모든 청년들의 길이 되어버렸다.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가지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내 집 마련은 상상조차 할 수 없고, 건강과 외모에 신경 쓸 여력 따위는 가질 수 없다. 청년들은 살아남기 위해 포기의 낭떠러지로 밀려났다.

여기까지라면 그래도 희망은 남아 있다. 청년들이 결국 포기하게 된 것은 어디에도 이 난국을 해결할 방법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노동개혁에 나서겠다며 해고를 쉽게 만들고 있고, 최저임금은 내년부터야 겨우 6천 원을 넘겼다. 등록금을 낮추겠다던 정부는 공약을 파기했다. 청년실업은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기성세대들이 권력을 잡고 있다.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청년들에게 희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청년들은 그렇게 포기를 강요받았다.

 

최저임금 카라멜 마끼아또

▲ 캬라멜 마끼아또님, 제 시급보다 더 비싸시네요.

 

 

정부의 해법

 

그런데 당정의 지적은 무언가 이상하다. ‘청년들의 사회 진출이 늦다’는 말까지는 동의한다. 이것이 저출산으로 이어진다는 분석도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당정의 해법은 교육의 기간을 단축하자는 것이었다.

정부는 이제까지 청년들의 ‘포기’를 막기 위해 어떤 정책을 도입했는가. 비정규직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했다. 정규직의 지위를 낮춘 ‘중규직’을 만들겠다고 이야기했다. 해고를 쉽게 만들었으며 대통령은 청년들에게 “중동으로 가라”고 말했다. 근본적인 해법은 없었다. 누구도 낭떠러지에 몰린 청년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청년들을 낭떠러지로 밀던 정부가 내놓은 해법은 학제를 축소하겠다는 말이었다. 학교에 다니는 기간을 2년 줄이면 사회에 2년 더 빨리 나갈 수 있고, 그러면 출산율도 올라가지 않겠냐는 분석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분석이다. 청년들이 2년 일찍 취업시장에 뛰어들면 취업시장이 안정화될까? 취업시장에 먼저 들어가면 취업이 더 쉬워질까? 2년 일찍 취업시장에 들어간 청년들은 2년 일찍 취직을 하고 2년 일찍 결혼을 할까? 그렇다면 그들은 더 이상 세상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아니다. 2년 일찍 취업시장에 들어가도 청년들은 여전히 실무와는 관계없는 토익 점수와 학벌, 자격증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매겨야 할 것이다. 취업은 여전히 전쟁에 가까울 것이다. 먼저 취업 전쟁에 들어간다고 먼저 취업을 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백보 양보해 2년 일찍 직장을 잡는다고 해도 청년들이 잡는 일자리의 대부분은 여전히 비정규직일 것이다. 청년들은 여전히 불안할 것이고 고로 불행할 것이다.

청년문제의 핵심은 이들이 취업을 하는 시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얼마나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느냐에 있다. 삶이 안정되지 않고 매일 생존의 위기에 직면하는 시대에는 누구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려 하지 않는다.

저출산의 원인이 만혼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청년들이 더 빨리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 주면 된다. 그건 단순히 청년들이 취업 전선에 일찍 뛰어든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일찍 뛰어드는 만큼 일찍 해고당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언제 취업 시장에 뛰어들든 내일이 없는 세상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불필요한 스펙 경쟁 없이 능력과 열정에 따라 일자리를 잡을 수 있게 해 주고. 일자리를 잡을 수 없는 동안에는 국가가 최소한의 생활은 보장해 주고. 일자리를 잡은 다음에는 고용을 안정되게 만들어서 해고불안이 일상이 되지 않게 해 주고. 해고가 유연하면 그만큼 고용도 유연하게 만들어 주고. 중요한 것은 살만 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적어도 최소한의 희망을 남겨 주는 일이다.

정부의 역할은 그런 데서 발휘되어야 한다. 나는 적어도 저출산의 해법이랍시고 취업시장에 몸을 빨리 던지라고 말하는 정부가 있는 세상은 후대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박근혜 청년 중동

▲ 박근혜 대통령의 청년실업 대책은 이 정도 수준이었다. 늘.

 

 

공부할 수 있는 권리

 

당정은 이번 저출산 대책 논의에서 ‘학제 개편’과 함께 ‘대학 구조조정’을 제시했다. 소모적인 스펙 쌓기를 방지하기 위해 대학전공을 구조조정하고, 현행 4년인 대학교 학제도 일부 조정하라고 요구했다. 12년의 기초 교육과정은 10년으로 줄이고, 대학의 전공을 구조조정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의 중요한 권리 중에서 ‘교육권’이라는 것이 있다.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다. 그런데 당정은 기초교육을 2년 줄이고 대학 전공을 조정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국민의 교육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는 보이지 않았다.

불필요한 스펙 쌓기를 방지하기 위해 대학 전공을 구조조정한다. 당정의 이 말은 곧 취업에 특화된 대학교를 만들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취업에 불필요한 것을 가르치는 학과는 없애겠다는 주장으로 들린다.

교육부는 매년 부실대학을 선정한다. 부실대학으로 선정된 대학은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는 데에 제한을 받고,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퇴출에까지 이를 수 있다. 그런데 이 부실대학 선정 기준에 ‘취업률’이 포함된다.

이미 정부는 취업률을 이유로 ‘공부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고 있다. 부실대학 지정을 피하기 위해, 각 대학들은 취업률이 낮은 학과들을 통폐합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학생들의 ‘공부할 수 있는 권리’가 취업률을 이유로 박탈당했다.

당정이 이번에 주장한 ‘학과 구조조정’이라고 이 틀에서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취직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정부는 직접 국민들의 교육권에 손을 대려고 할 것이다.

문학, 어학, 철학, 역사학. 이들이 교정에서 추방될 날은 이제 머지않았다.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문학은 사라질 거다. 취업 면접에서는 어떤 책을 읽었는지, 어떤 사상가를 좋아하는지, 역사관이 어떤지를 묻지 않는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기초가 되는 이런 학문은 ‘실무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사라질 것이다.

어쩌면 이제 정말로 학교에서 복사기 돌리는 법이나 가르치게 될 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대한 고민과 사회를 향한 저항이 허락되는 캠퍼스는 이제 없다. 취업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많은 학과들이 대학에서 쫓겨나고 말 것이다.

그래, 그래서 취업이 빨리 된다고 치자. 문학을 사랑해 문예창작과에 가려고 했던 학생을, 문예창작과를 없애 경영학과에 입학시켰다고 하자. 그래서 취업을 빨리 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래서 출산율이 올라갔다고 생각해 보자.

그렇게 만들어지는 출산율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공부하고 싶은 것을 공부하지 못하고, 취업을 이유로 국민의 권리를 빼앗는 정부 아래서의 출산율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출산율이라는 숫자가 올라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국가의 존재는 사람을 위한 것이지, 숫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국민의 권리를 보호해 줄 의지가 없는 국가는 존재의 가치가 없다. 출산율을 이유로 교육권을 박탈하는 정권은 존재의 이유가 없다.

세상을 고민하지 않는 노동자를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만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을 포기하고서라도 취업률을 높이고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주장은 국가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발언이다.

 

대학구조개혁평가 2015

▲ 김재춘 교육차관이 부실대학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인간됨을 포기하라

 

물론 당정의 이번 주장이 당장 이행되기는 힘들 것이다. 학제 개편이라는 사업 자체가 규모가 크고 혼란이 많이 생길 수 있는 사업이다. 당장 이번 당정협의회에는 교육부는 참여조차 하지 않았다. 교육부는 상당히 신중한 입장을 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작년 12월 정부가 주장한 가을학기제 도입도 관련 움직임이 없는 상황으로, 무산에 가까운 상황이다. 2006년에도 학제 개편이 논의된 적 있었지만 결국 추진되지 못한 바 있다. 미군정 당시 만들어진 학제가 지금까지 이어져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학제 개편이 얼마나 어려운 사업인지 짐작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정의 이번 주장은 그 주장만으로도 상당한 상징성을 갖는다. 당정이 주장한 이번 해법은 아주 단순하게 요약할 수 있다.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더미로 쌓여 있는 청년들에게 한 가지를 더 포기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제는 교육받기를 포기하고, 인간됨을 포기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말했듯 청년들의 포기는 선택이 아니었다. 청년들은 포기를 강요받았다. 그리고 이번에도 청년들은 또 한 번의 포기를 강요받아야 할 것이다. 교육을, 고민과 성찰과 생각을, 다시 말하자면 인간됨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계가 되어야 하는 세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취업률과 출산율이라는 숫자만으로 모든 것이 판단되는 세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인간됨을 포기해야 하는 사회. 숫자로 취급받아도 살아남는 데 만족해야 하는 사회. 45년 전 전태일이라는 노동자가 몸에 불을 붙이고 외쳤던 말, “우리들은 기계가 아니다”라는 말이 여전히 유효한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 이 글의 참조문헌과 사진의 출처는 widerstand365.tistory.com/758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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