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를 끊어라

(* 이 글은 딴지일보에서 발행하는 “벙커 깊수키”라는 잡지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

인간이라는 단어는 참 애매하기 그지없다. 그냥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려면 사람 인()자 하나만 쓰면 될 것을 굳이 왜 사이 간()자를 하나 더 붙였는가 말이다. 물론 그 해석, 안다 알아. 사람이 혼자 살면 사람이 아니고, 사회적 관계를 구성하며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때 진짜 사람이 된다는 의미에서 “사람들 사이”라는 의미로 한글자 더 붙였다는 거.

근데 그거 꿈보다 해몽 아닌가? 한 글자만 써도 되는데 뭔가 두 글자는 되어야 단어 같고 해서 적당한 거 하나 가져다가 붙인 거 아닌가? 하여간 떨떠름하게 만들어진 단어가 바로 인간이다. 그러나 이 인간이라는 단어는 “인간관계”라는 말이 구성되는 순간, 오오~ 제격이네~ 하는 느낌을 주게 된다.

사람 사이의 관계. 인간 관계. 딱 떨어지는 문장 구조 아닌가 말이다.

이제 뭔가 진짜로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말이 의미가 있어 보이고, 제자리를 찾은 것 같고, 역시 사람들은 어울려서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는 거구나 하는 느낌도 주고, 그 관계는 관계자외 출입금지 할 때의 관계가 아니라 섹스를 연상시키게 되고, 섹스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순간 얼굴이 발그레해지고 호흡이 가빠지면서 어딘가 은밀한 곳도 발그레해지는 그런 살아있는 느낌이 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 늘어 놓을 얘기는 엉뚱하게도 “인간들이여, 관계를 끊어라!” 라는 얘기가 될 것이다. 아니 이제 겨우 한껏 분위기 띄워 놓더니 뭐? 관계를 끊으라고? 뭐 이런 후레자식의 개소리가 있나~ 하고 화를 내시는 분의 모습이 눈에 선한데, 내가 원래 그런 넘이다.

관계의 고통

기본적으로 인간관계는 고통을 유발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서툰 섹스도 고통을 유발한다. 물론 익숙하지 않은 경우에 어쩔 수 없이 살짝 발생하는 고통도 있겠지만, 상대의 기분을 고려치 않고 난폭하게 들이 박고 흔들다가 1분만에 끝내 버리는 섹스는 특히나 엄청난 고통을 유발한다. 아무리 급해도 그러지는 마시라. 섹스도 대화인데, 일방적으로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끝내는 대화를 대화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 , 이런 얘기 하려고 한게 아닌데.

그리 길지 않은.. .... 아니, 그리 짧지 않은 인생을 돌이켜 보자면 즐거움을 유발한 행복한 관계보다 고통과 환멸과 삶에 대한 회의를 유발한 그지같은 관계가 훨씬 더 많았음을 알게 된다.

비록 시간이라는 것이 모든 고통을 지우고 쓰디 쓴 맛을 향기로 바꿔주는 마법의 몰약 같은 효과가 있어서 추억이란 언제나 좋은 것이여~ 가 되고 심지어 개같이 구르던 군생활 마저도 지나고 보면 좋은 기억을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냉정하게 평가해 보시라.

군대 다시 갈 거냐고 물어보면 아무도 고개를 끄덕이지는 않는다.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만나겠냐면 눈을 반짝 거릴 인간들도 그 연인과 헤어지는 순간의 고통을 다시 겪고 싶냐면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며 도망갈 것이 확실하다.

행복한 관계는 순간이고 고통스러운 관계는 지속되며 내 삶을 파괴한다. 어느 한 순간의 고통의 물리량을 A 라고 하고 그 고통이 지속되는 시간을 ΔT 라고 한다면 하나의 관계가 내 삶에 주는 고통의 총량은 A * ΔT 가 된다. 따라서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는 고통의 총량을 계산하려면 A(t) 함수를 시간에 대해 정적분을 해서.. .. 그만두자.

시간이 흐르고 나면 우리의 불확실한 기억력은 A 는 기억하지만 ΔT 는 기억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 때문에 그 고통이 별거 아니라고 느끼게 되는 것 뿐이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을 만드는 시간의 대부분은 바로 그 고통스러운 ΔT 로 가득차 있는 것이 사실인데 어쩌란 말인가.

가장 가깝고 친밀해야 할 관계일 수록 더욱 더 큰 고통을 유발한다는 것, 이제는 슬슬 상식으로 자리잡아 가는 것 같다.

결혼한 사이? 당연히 서로에게 고통을 주고 살아가는 사이이다. 그 고통을 감내할 수 있다면 그나마 유지될 것이며, 그 고통을 견뎌내지 못하는 순간 이혼하게 된다. 물론 그러고 나서 또 ΔT는 잊어 버리고 다시 결혼을 하곤 하지만.. 인간은 원래 그렇게 무식한 동물이니까 어쩔 수 없다.

차라리 결혼생활은 “이혼”이라는 합법적인 무기로 종료시킬 수 있기 때문에 그나마 덜 고통스러운데 반해, 가족이라는 관계는 천형처럼 평생을 따라 다니며 인간의 영혼을 좀먹는 것도 사실이다. 신성한 가족관계에 대해 어떻게 그런 몰지각한 표현을 하냐고?

네놈들 중에 가족관계로 인해 고통을 안 겪어 본 사람이 있다면 나를 돌로 쳐라! (실제로 치지는 말고.. 돌 맞으면 아프다.)

술먹고 자식을 패거나 돈 뜯어가는 아버지, 어린 자식들 버려두고 바람피우다 집나간 어머니로 인해 겪는 고통 같은 거야 뭐 너무 잘 알려져 있으니 집어 치우자. 명절 때마다 모이면 쌈나는 가족이 어디 한 두개인가? 오늘 내일 하는 어르신이 한 몫 재산이라도 움켜쥐고 있으면 그 앞에서 아양 떠느라 큰소리 안나기도 하지만, 그런 집 일수록 어르신 돌아가시면 빈소에서부터 멱살잡이 벌어지는 것이 기본이다.

이런 드라마틱한 고통은 오히려 구경거리라도 된다. 틈만 나면 쏟아지는 인권침해형 잔소리는 사람들이 그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큰 고통이 된다. 시시때때로 옆집 엄친아와 비교 당하는 아이들, 이거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자라면 잔소리 안 들을 거 같지? 평생 시달린다.

옆집 아들 넘은 주식 투자해서 한 몫 잡아 강남에 집샀다는 데 넌 언제 월세방 신세 면할 거냐, 누구네 딸네미는 미국 유학 갔다 와서 재벌집에 시집갔다는 데 네 딸은 맥도리아 알바나 하고 있으니 시집은 가겠냐, 이런 비교도 고통스럽긴 마찬가지다. 보통은 그렇게 갈굼 당하고 집에 와서 자기 자식들을 갈구기 시작하니 고통은 전파되고 또 전파되는 과정에서 증폭되기 마련이다.

여성들은 여성들대로 시집은 왜 안가냐, 왜 그렇게 살이 쪘냐? 수술이라도 좀 해라, 뭐 이런 몰지각한 개소리들 때문에 고통의 총량이 늘어나기 시작하고, 남성들은 남성들대로 출세는 언제 할거냐, 하기사 네 주제에 무슨 출세냐, 기술이나 배워 돈이나 벌지 뭐 꼴났다고 글을 씁네, 환쟁이를 합네, 딴따라를 합네, 하고 다니냐, 공부해서 학위 따더니 백수 하려고 학위 딴거냐, 뭐 이런 소리 끝이 안난다. 씨바, 무슨 돈을 벌려고 해도 일자리가 있어야 돈을 벌지!!

이런 개소리의 공습은 절대 성별, 나이, 지위고하. 학식유무, 외모를 가리지 않는다. 유일하게 가린다면 물려받아 보유한 돈의 절대량이랄까. 돈 많은 넘한테는 아무도 저런 잔소릴 못한다. 맞잖아. 이게 우리가 사는 세상인데 뭐.

우리 모두가 피해자인 셈이다. 거기에 또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면 피해를 받음과 동시에 그 고통을 증폭시켜 남에게 돌려준 가해자이기도 하다. 여기서 피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죄인이겠냐는 말이다.

범인은 바로 그 “관계”인 것이다.

관계를 끊자

인간을 끊을 수 없으니 그냥 관계를 끊자는 거다.

제일 좋은 것은 애초에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다. 아니 섹스는 좀 다르다. 섹스는 많이 할 수록 좋다. 감당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거기에 섹스로 인해 유발된 진짜 제대로 된 고통을 경험하기 싫으면 콘돔은 꼭 쓰자. 이런 저런 개소리 하지 말고 콘돔은 꼭 써라. 인생 선배의 조언이다.

섹스 말고 관계는 가급적 맺지 마라. 제 아무리 관계자외 출입금지 구역에 들어가 보고 싶어도 관계는 맺지 말자. 많이 들어가 봤는데 들어가봐야 쥐뿔 아무 것도 없다.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인간 세상 한 평생 살아가면서 관계를 안 맺을 도리가 없는데 관계를 맺지 말라니, 오뉴월 땡볕에 땀도 못내고 뒈질 소리 하지 말라고?

맞는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관계를 안 맺을 수가 없는데, 어떻게 관계를 안 맺는가. 인간이라는 말 자체에 사이 간자가 들어가면서 관계를 상징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러니까 개떡같이 말을 하면 찰떡같이 알아들으라는 거다. 어쩔 수 없이 맺게 되는 관계, 가족관계, 연인관계, 부부관계, 이런 거는 안 맺을 도리가 없으니 맺는 거다. 물론 취직하면 직장에서 상하 관계가 생기기도 하고 동료 관계가 생기는 것도 막을 도리는 없다. 그러니 맺어라.

방안에 숨어 히키코모리가 되지 않을 바에야 맺을 관계는 맺긴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 관계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거다. 집착이 심할 수록 고통은 그 집착량의 세제곱에 비례해서 증가하기 마련이다.

당신이 가족 관계에 집착할 수록 당신은 바로 그 가족관계로부터 상처를 받고 피해를 받게 되며, 당신이 받은 피해의 네제곱에 비례하게 다른 가족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이 똑같은 비례식은 연인관계, 부부관계, 직장관계에도 적용된다. 직장관계라고 하면 당연히 Company 에서 맺어지는 관계지, Rectum 을 통해 맺어진 관계는 아니다. 그런 특수 관계는 좀 알아서 하시길 빈다.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는 그대로 자식에게로 이어진다고 한다. 당신이 부모에게서 받은 고통이 크다면, 그걸 일부러라도 자식에게 전파하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된다는 거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집착을 버리는 것이 있다.

내 아버지, 내 어머니가 얼마나 개차반이었는가가 내 인생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 비록 피를 나눈 관계라 해도 탯줄 끊어지는 순간 남남이다. 사소한 법적 의무가 몇가지 남긴 하지만, 그거 심각한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채택할 수 있는 법적 방법들도 있다.

연인관계? 당신의 인생에 있어서 어떤 것이 결여되어 있는지 모르지만, 자신의 결여를 연인에게서 메꾸려고 들지 말라는 거다. 그거 절대 안 메꿔진다. 내게 부족한 게 있다면, 그 부족함도 나를 구성하는 요소인데 그 자체도 사랑해 버리는게 맞는 거지 메꾸려고 노력하지 말라는 거다. 그거 내가 내가 아닌척 하려고 노력하는 되도 않는 수작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부부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저 여자는 내 부인이기 전에 한 명의 독립된 인생을 누리는 인간 개체이고, 저 남자는 내 남편이기 이전에 한 명의 고통받는 무능한 현대인이라는 점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된다. 뭘 자꾸 바꾸고 뭘 자꾸 만들려고 하지 말라는 거다.

출근 자체를 하기 싫게 만드는 또라이 상관은 어째야 하나? 그자 역시 이 회사에 빌붙어 어떻게 해서든 월급 타먹고 집에 가서 갈굼 덜 당하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노예일 뿐인데, 뭘 그리 화를 내나 말이다. 정 보기 싫으면 회사를 옮기든가, 그 자가 회사를 옮기도록 만들면 된다. 아니 그 이전에, 관심 자체를 끊어 버리는게 더 현명할 수도 있다. 조만간 임금피크제 걸려서 명퇴할텐데 뭘. 아니면 구조조정 당하든가.

인간관계로 인해서 발생하는 고통? 그 태반은 내가 그 관계에서 뭔가를 지나치게 기대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아버지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 뭐 그리 나쁘냐고 반문하지 마시라. 사람이 어떤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 그 자체가 엄청난 고통이다. 욕망을 숨기고, 자유를 포기하고, 권리를 반납해야지만 남들이 보는 수준에 맞춰 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난 그러고 싶지 않다는 얘기다.

그러니 관계에 대해 기대를 하지 않으면 된다. 기대를 하지 않는데 무슨 고통이 있겠냐는 거다. 내 자신의 역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여기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선언해 버리면 된다. 더 이상 요구한다면 난 못한다고 자빠지라는 얘기다.

문제는 너 자신이야

관계고 뭐고, 고통이고 행복이고, 집착이고 역할이고 이 모든 문제는 다 어디서 나온 걸까? 결국 문제는 내 안에서 나오는 거다. 이거 되게 재수없는 말이지만 사실이다.

이 포인트에서 그러니까 너 자신을 더욱 갈고 닦아서 이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로 만들어 돈 많이 벌고 행복하게 살라고 얘기한다면 그게 바로 이 사회에 유행하는 쓰레기 마약같은 존재인 자기계발서가 되는 거다.

개드립과 썩개로 무장한 사이비 글쟁이인 물뚝심송이 아무리 흉칙한 놈이라 해도 그런 소린 하고 싶지 않다. 아니 해 봤자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사람이 노력해서 스스로를 바꿀 수 있을 것 같으면 왜 몇 백만년 동안 이 지구상에 살아온 인류가 요모냥 요꼴이겠는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되도 않는 소리는 집어 치우는 것이 옳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나임을 인정하는 거다. 내가 보기에도 부족한 곳 투성이고 무능하고 게으르고 용납 불가할 정도로 섹스중독자에 우울증 환자고 맨날 술먹고 놀기만 좋아하는 놈이라도 그게 나 자신이면 인정하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잖은가.

뭔가 바꿔 보고 싶다고? 노력해 보는 걸 말리진 않겠다. 그러나 언제나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은 내가 이 부분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려면 이 정도의 인내와 고통이 필요한데, 그 인내와 고통이 내가 감내할 수준인지, 그렇게 인내와 고통이라는 비용을 지불하고 나를 바꾼 결과 그 비용을 상쇄 시키고 남는 장사가 될 것인지 하는 문제다.

작은 결점 하나를 바꾸고 개선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인내와 고통이, 그걸 바꿈으로써 얻는 수익보다 별거 없다면 그 미친 짓을 왜 하는가 말이다. 그런 짓은 하지 말라는 거다.

철저하게 합리적으로 비인간적인 수준으로 냉정하게 생각을 해 보라는 얘기다.

창피하고 쪽팔리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그게 흔히 말하는 자기 객관화라는 거다. 이게 출발점이다.

이 자기 객관화가 되면 관계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 아니 관계에 대해 기대 자체를 안하게 된다. 내가 이런 놈인데 저 사람이 나에게 잘 해줄 리가 없지, 이상하게 잘해준다면 뭔가 나한테 바라는 게 있는 거겠지, 이런 생각을 마음 편하게 할 수 있게 된다는 거다. 그러면 편안하게 나한테 바라는 게 뭔지를 묻고, 그걸 내가 해줄 수 있는지 없는지를 답변하게 됨으로써 상대 역시 이 관계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해 줄 수도 있다. 이건 진정으로 위대한 행동이다.

그게 바로 관계에 대한 집착을 끊게 되는 첫걸음이며 진정으로 행복하고 자유로운 인생의 첫 스타트가 된다는 거.. 이거 되게 사악해 보이지만 진짜라니까.

내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을 세줄 요약 해 준다.

관계는 고통이다.

관계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행복해진다.

그 시작은 자기 객관화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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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관계 를 끊어라

  1. 어디다 내다놔도 부끄럽지 않을 개막장 가족들 틈바구니 속에서 청소년기까지 지내다 의절한지 어언 30년이 흘렀지만, 제가 살면서 제일 잘 한 선택이라 생각하는 입장에서 너무 공감가는 글이었습니다. 하지만 자기 객관화는 너무 어려워서 죽는 순간까지 아마 못 할듯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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