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이야기

*일본 미연시 제작의 전설 엘프사가 망해간다는 소식이다.

http://www.thisisgame.com/webzine/news/nboard/11/?n=60291

화무십일홍이라던가. 영원한 강자는 없는 모양이다. 엘프를 추억하면서 딴지 독투에 썼던 글을 여기도 옮겨둔다. 다소 19금스러울수도 있지만 진짜 19금은 없다. 작년에 쓴 글이라 시간 차이가 1년 있다.

 

얼마전 <30대가 된 덕후를 위한 이야기> 뭐 이런 글을 봤다(어디서 본건지 누가 쓴건지 기억도 안난다). 그 글을 보고 난 뒤 생각난 것을 끼적거려 보려고.

 

카츠라기 미사토

 

에반게리온에 나온 미사토 ‘상’이 29세라는거 받아들이라는 이야기. 내가 에바에 그렇게 심취하지 않아서 그런가 몰라도(에바 보는 사이 내눈엔 아스카밖에 안보였다). 에바 덕들한테는 꽤나 충격적인 이야기인 모양이더라. 신지가 레이꺼냐 아스카꺼냐(닥쳐 카오루꺼다!) 이런 얘길 하는 사이에 자기 나이가 이미 30대를 넘어가버린 사실을 깨닫는거. 내가 83년생인데 에바덕이었다면 미사토는 두근거림과 설레임의 ‘어른의 키스’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3살 연하의 여자가 된다는 사실.

 

어른의 키스

(그야말로 전설의 한 장면. 어른의 키스)

뭐 그런거다. 중딩때 퇴마록을 보고 열광하던 참에도 어차피 중딩 눈에 둘 다 어른인 판국에 승희(71년생)가 현암(64년생)보고 현암군 현암군 이러는게 뭐 어때서라고 생각하던 때를 지나, 이젠 현암을 넘어 박신부 나이가 되어가는 ‘내’ 이야기. 지금 나이에 7살 연하가 나한테 ~군 이러면 드는 생각은 딱 두 가지다. ‘얘가 왜이러나’ 아니면 ‘이게 현실 미연시판 그린라이트인가? 헬렐레’

 

이렇게 나는 늙어가는데 내가 봤던 그들은 그대로다. 판타지 소설에서 드래곤이나 엘프와 함께 늙어가는 인간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이때 생각난 게 있었다..

 

동급생. 2편 말고 1편.

 

동급생

 

80년대 초반 출생 치고 환장하지 않은 사람 별로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야동은 토렌트로 풀리지도 않았고, 아직도 아버지가 혹여나 빨간 테이프를 장롱에 처박아놓지 않았을까 뒤져봐야 했을  90년대에, 딸랑 디스켓 몇 장으로 이정도로 침이 질질 흐를 콘텐츠를 찾는다는 것은 무리다. 절대 무리다. 모두가 불법복제를 했으니 비용이 공짜요, 컴퓨터를 모르는 부모님이 대부분이었으니 숨기기에 최고고, 하물며 여주인공 상당수가 어렸다. 아청법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연하와 연상의 중간선을 절묘하게 넘나드는, 한문 시험 성적이 ‘가’가 나와도 뜻을 아는 ‘동급생’이라는 그 단어. 어쩌다 하악거리며 보게 됐을 아버지의 빨간 테이프에 나오던 이들을 순식간에 아줌마들로 만들어버린 그 단어. 매일 밤 꿈속의 여인들의 평균 연령대를 확 낮춰버린 그 단어.

 

그야말로 청춘의 한토막이다. 어쩌다 공략을 좀 꼬아놓은 캐릭터 때문에 모두가 울분을 삼키며 공략집을 찾아낸 놈이 영웅이 됐었고, 주체못할 펄떡거림에 급한 놈들은 공략이고 나발이고 올 엔딩 세이브 파일을 찾아다녔다. 아니, 올 엔딩 세이브가 없으면 동급생이 아니었다. ‘우린 대사 따위를 읽을 시간이 없다고!!!’를 외치는 놈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그 와중에 쟤들은 어떻게 저기까지 진도를 나갔을지 궁금해하는 내가 별종이었다.

동급생_등장인물

캐릭터도 어지간히 다양했다. 어떤 놈들은 쭉쭉빵빵이 확실한 누님 타입들에 환장을 했고, 어떤 놈들은 생전 본적도 없는 ‘교복녀’의 세계에 눈을 뜨면서 미쳐 날뛰었다. 물론 누가 옳네 그르네 싸울 일은 없었지. 모두가 서로의 취향을 묻고 존중하고 싸울 틈도 없이 자기만의 판타지에 빠져들기도 바빴으니까. 시대를 앞서간 다양한 캐릭터들이 있던 게임을 두고 자기 취향 하나 발견하지 못한 놈은 거의 없었을거다. 나? 교복녀파였다.

 

그 와중에 이들이 있었다.

세리자와 요시코

세리자와 요시코

신교지 레이코

신교지 레이코

 

대체 이 아줌마들은 뭐냐…가 내 솔직한 당시의 심경이다. 무려 교복을 입은 내 나이 또래(내가 중1때 동급생을 처음 해봤으니 다른 캐릭터들도 연상이긴 했다만)의 어여쁜 캐릭터들이 수두룩한 곳에서 왜 이런 아줌마들을 봐야하나. 짜증났다.

 

요시코 아줌마야 전형적인 ‘안경 벗고 머리 풀면 완전 이쁨’의 전형이라 치자. 거기에 하악한 사람도 꽤나 많았을거고. 굳이 취향이 아닌 사람은 공략 안하면 그만이니까.

요시코_변신전

요시코_변신후

(안경 벗으면 초미녀라는 말도 안되는 공식은 이 캐릭터가 처음이지 싶다)

 

하지만 레이코 아줌마는 어떨까?

신교지 레이코_집앞

 

취향 아니고, 공략에 관심이 없어도 피해갈 수가 없었다. 이 아줌마와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시간을 빨리 넘겨야 공략이 훨씬 편해졌고, 심지어 공략집에도 이 아줌마를 적극 이용하라는 말까지 나왔다. 다른 캐릭터는 이벤트 한번 보자고 오만 용을 써야할 때, 이 아줌마는 게임오버만 안되면 영원한 시간을 함께 보낼 수가 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타임머신 아줌마’라고 부르는 놈까지 있었다(하여간 시간 조작만 들어가면 죄다 타임머신이다). 아 기왕이면 어리고 예쁜 애로 타임머신을 만들어 줄 것이지 왜 하필 이런 노땅 아줌마를 데려다가 이렇게 자주 보게 만드냐고오오오!!!!

떡볶이

(내가 레이코 아줌마를 딱 이런 느낌으로 봤던것같다)

 

대체 어떻게 이렇게 연결되는지 모르겠지만, 앞의 미사토 29살 글을 읽었을 때, 난 이 아줌마들이 생각났다.

 

대체 이 아줌마들은 몇살이었을까?

 

찾아봤지.

 

세리자와 요시코 25세

 

신교지 레이코 25세

 

2014년 기준 25세면 90년생.

 

소녀시대 윤아, 수영이랑 동갑.

 

아…

 

지금 내가 그들과 만나면 7살 연하다.

퇴마록의 현암과 승희의 나이차이다.

 

내가 이 처자들한테 사과를 해야 할 판이다… 십수년이 넘는 시간동안 아줌마라고 불러서 미안했다고…

 

그래…난 이렇게 늙어가는거다.

 

노가와 사장

이양반(들)처럼 되는 것도 순식간이겠지.

 *그알싫 신인류 연대기에서 물뚝심송님은 동급생에 대한 심도깊은 분석을 보여주신 바 있다. 엘프가 망해간다고 하는 시점에, 그 감회가 남다르실 것이다. 고견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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