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한국에 살면 무뎌지는 것들이 있죠. 테러라든가, 전염병이라든가, 국제관계 같은 것들이요. 오늘은 그 중에서 전염병, 좁게는 에이즈에 대해서 얘기해볼까 합니다.

제가 우간다에 체류한 이유는 초등 교사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NGO의 우간다 사무국에서 근무했기 때문입니다. 일의 특성상 초등학교 방문이 잦았고, 학생들보다는 선생님들과 대면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 날은 단체가 지원하는 학교 중 한 곳에 방문한 날이었습니다. 약속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탓에 선생님들의 점심시간과 겹치게 되었습니다. 외부 일정 때문에 매번 학교에 안 계시던 교장선생님이 저희 팀을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우간다의 초등학교 교장선생님들은 학교 내부 활동보다 외부 회의와 감사 등의 일정이 많아 어느 초등학교엘 가도 교장선생님을 항상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교장선생님이 학교에 언제나 계셨던 것 같은데 말이죠… 사실 오래돼서 기억이 잘 안 납니다ㅎㅎ

초면은 아니기에 ’오? 웬일!_+’하면서 교장실로 들어가 교장선생님과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데, 제가 ”타운에서 오는 길”이라고 하니 본인도 오전에 타운에 갔다 방금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어딘가 불편해 보여 “괜찮으시냐” 여쭤봤더니 병원에 갔다 오는 길이며, 매주 목요일마다 와서 약을 받아가라는 진단을 받았답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내가 희생자라서…Since I am a victim…”이라고 말했습니다. 

교장선생님이 나가고 뭔가 께름칙해 현지 직원에게 물었습니다. “아까 교장선생님이 희생자victim라고 했는데 선생님 혹시 에이즈 환자야?” 했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희생자victim‘라는 표현은 에이즈 환자를 에둘러 표현하는 단어랍니다. 살면서 에이즈 환자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은, 그것보다 내가 방금 전까지 악수하고 웃으며 대화했던 사람이 에이즈 환자인 경우가 처음이라 순간 당황해 버렸습니다. 현지 직원도 자기가 스스로를 에이즈 환자라고 밝힌 사람은 태어나서 두 번째로 보는 거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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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리본은 HIV 양성 환자와 에이즈 환자를 상징합니다.

에이즈AIDS란?

에이즈는 HIV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발생하는 전염병입니다. 후천성 면역결핍 증후군으로도 불리며 흔히 부르는 에이즈AIDS는 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의 약자입니다. 잠복기가 최장 15년 이상이나 되는 바이러스성 질병이기 때문에특별한 증상이 나타나지는 않지만 신체의 면역, 저항력이 저하되는 질병입니다. 감염자는 면역력이 약화되어있기 때문에 기타 다른 질병에 감염될 확률도 높아집니다. ‘HIV가 양성이구나’하고 본인이 증상을 느낄 수 있을 정도면 이미 병이 상당히 진행되어 상태가 심각해진 것이죠. 에이즈 질환으로 사망하는 환자만큼 합병증으로 사망하는 환자도 있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에이즈는 어떻게 전염되는 것일까요? HIV 바이러스에는 어떻게 감염되는 것일까요?

생각보다 에이즈에 전염되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내 옆의 저 사람이 HIV 양성이고 에이즈 확진판정을 받은 사람이라고 ‘무서워!!!! 손도 닿지 말아야겠어!!!! 눈만 마주쳐도 나는 에이즈 감염자가 되어버릴지 몰라!!!!!!!!’하고 지레 겁먹을 필요가 전혀 없다는 얘기죠. 피부와 피부가 접촉할 때는 감염의 위험이 없고, 키스나 성행위 등으로 타액 혹은 체액을 교환해도 감염될 확률은 적다고 합니다. 화장실을 같이 쓴다고해서 전염될 일은 전혀 없겠지요? 정말, 에이즈에 확실하게 걸리고 싶다면, 에이즈 환자의 피를 수혈하면 됩니다. 주사바늘을 공유하거나 피를 수혈하지 않는 이상, 즉, 직접 피가 섞이지 않는 이상 HIV 음성인 사람이 갑자기 HIV 양성판정을 받기는 상당히 어렵다는 이야기지요. 이 외에는 에이즈 환자인 어머니가 아이를 낳을 경우입니다. 이 경우 아이는 감염자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저희 직원이 본 첫번째 환자는 보건소에 근무하는 의사였다고 합니다. HIV 양성인 엄마가 아이의 HIV 바이러스 양성-음성을 검사하기 위해 데려왔는데 의사가 채혈을 하던 중 아이가 팔을 휘둘러 주사바늘이 빠졌고, 그 빠진 주사바늘이 의사를 찔러 에이즈에 감염되었다고 했습니다. 위에서 말했던, 주사바늘을 (원치 않았지만) 공유한 경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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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에 걸리는 방법: 성행위, 주사, 임신, 출산, 모유수유, 직업상 노출, 수혈, 장기이식 image from www.aids.gov

결국, 돈이 문제입니다.

교장선생님 말씀으로는, 요 몇 주간 병원에 갔지만 글루 타운 전체에 약이 없다고 했답니다. 원래 PEP이라는 약을 처방해주는데, 지금 이 약이 없어 대체로 복용할 수 있는 약을 받아왔고, PEP은 7주 후에야 들어온다고 했답니다. PEP은 Post-Exposure Prophylaxis의 약자로 HIV 바이러스에 노출된 것 같은 상황에서 가장 먼저 처방하는 항-HIV 바이러스 약입니다. PEP이 효과를 보려면 HIV 바이러스에 노출된지 72시간 안에 PEP을 복용해야 합니다. 72시간이 지나면 바이러스가 피에 완전히 흡수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여기 사람들은 사고-교통사고 등-가 나도 PEP을 무조건 먹습니다. 출혈이나 상처가 커 신체를 절단해야 하는 경우 감염의 위험이 있는데, 이 때 사용되는 도구가 오염이 되지 않았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죠. 그러나 PEP은 항암제만큼 독해서 복용하게 되면 살이 쪽쪽 빠지고 몸에 기운이 빠지는, 그런 약이라고 합니다. 

PEP은, 일터에서 감염된 환자의 경우 보험회사에서 지원하거나 성생활을 통해 감염된 환자의 경우 미국 법무부에서 지원하는 Office for Victims of Crime이라는 단체에서 지원받게 됩니다. 에이즈 치료제가 비싸기 때문에 가난한 감염자들이 스스로 약을 구입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러나 부패한 정부 관료들이 약값을 중간에 착복하거나 약을 빼돌려 뒤로 파는 일이 많아 정작 혜택을 받아야할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가까운 예가 방금 전까지 저와 대화하던 교장선생님이죠. 

교장선생님은 혈액검사를 통해 잠복기 초기에 HIV에 양성이라는 것을 알게 된 상황입니다. 이런 경우 계속 PEP을 복용하며 병환이 심해지는 것을 늦추면서 바이러스와 같이 살아가는 것이 유일한 답이라고 합니다. 에이즈를 완전히 치료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에이즈 환자 수를 줄이기 위한 각국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가장 확실한 감염자인 에이즈 환자의 태아같은 경우, 임신 중일 때 임산부에게 약물을 투여해 아이는 HIV 음성으로 태어나도록하는 치료법도 개발되었다고 합니다. 역시 일단 약을 복용하려면 약값이 있어야 할 텐데 이 약물이 무료로 배포가 될는지, 산모가 복용한다면 태아에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지켜봐야 하겠지요.

교장선생님과 대화하면서 그녀가 하루라도 더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생들 가르치기’라는 본인이 좋아하는, 하고싶은 일을 하며 마음껏 웃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습니다. 수업을 참관하고 나오면서 ‘class was wonderful’이라고 말하는 입꼬리와 눈이 예뻤습니다. 이런 예쁜 사람들이 더 많이 고통받지 않았으면 합니다. 옆에 앉아 같이 웃고, 손을 맞잡고, 떠들고, 눈을 맞추면서 ‘희생자victim‘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의 놀라움이나 불치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보다, 내 옆에서 웃는 한 사람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

Post-Exposure Prophylaxis(P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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