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사물과 연애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내가 쏟아놓는 이야기도 엉뚱한 방향으로 쏠릴지도 모르겠다. 연애라는 말만 나오면 섹스만을 연상하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뭐, 유명세를 치르지 않는 대중에 속하는 나는 이 또한 조용히 지나가 주겠지 하며 글을 쓴다. 제제를 당신만큼이나 아끼는 독자로 밍기뉴를 갖고 싶어 앞마당에 이름을 달아 “나의 나무야” 하던 아이들과의 식목일 추억도 생각하면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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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작가 J.M. 바스콘셀로스의 원작을 마르코스 번스테인 감독이 만든 영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는 2014년 5월에 개봉했다. 개봉하자마자 달려가서 본 이 영화는 내 생각만큼 많은 사람이 보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이면서 스테디셀러이기도 하기에 원작에 대한 보전심리로 관객이 별로인가 했다. 내 주변에 이 영화를 봤다는 이가 아직 없었거든.

아직도 나의 나무를 그리워하고 그 나무를 바라보며 건넨 말들과 그 스침과 그리움에 젖는다. 그리고 여전히 나의 제제를 꿈꾸는 나도 소아 성애자가 되고 롤리타 콤플렉스에 빠진 이가 되는 건가? 최근에 영화가 개봉되면서 다시 이 책을 샀는데 그 책 표지를 쓰다듬으며 웃음 짓던 것처럼 문학이 주는 의미는 개인마다 다양하게 받아들이고 느끼게 한다.

 

“네가 잘 보살펴주면 쑥쑥 잘 자랄 거야.”

“큰 나무가 좋은데 이건 너무 약하잖아.”

“너 같은 밍기뉴네. 쑥쑥 자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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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기뉴는 어린 라임 오렌지 나무이다. 제제만큼 어린나무로 제제의 상상력으로 밍기뉴는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네 누나 말이 맞아”

“다들 늘 자기가 맞지!”

“더 자세히 보면 누나 말을 믿게 될 거야”

“난 새가 아니야, 밍기뉴야. 네 오렌지 나무야”

“어디로 말해?”

“몸 전체로”

“머리를 기대봐, 내 심장 소리가 들릴 거야. 올라와. 재미난 것을 보여줄게”

“가지가 너무 얇잖아. 안 부러질까?”

“조심하면 괜찮아”

“누나, 밍기뉴가 뭐야?”

“새끼손가락”

밍기뉴는 숲길을 달려가는 백마가 되기도 한다.

아이유의 앨범 수록곡 중 ‘제제’가 내 주변의 십 대들에게 주요 화젯거리더라. 제제 타령을 꽤 하던 나에게 아이유의 곡에 대한 물음이었다. 아이유의 리메이크앨범 외에는 딱히 친근하지 않았기에 ‘제제’를 함께 들어 보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근래에 아이유의 연애 이야기부터 검색어 상위를 차지하기에 대중에게 관심받는다는 징후 정도로만 생각했거든.

대중문화의 위력이 엄청난 현대 사회의 한 증상이기도 하지만 이런 문화 환경에서 대중문화의 이윤추구가 상품으로 전락을 의미하게 되었지만, 소비자인 대중은 어쨌거나 그 상품에서 다양한 감정을 만나질 않던가.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 이입되어 음원을 만든 이의 의도나 취향으로 곡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니까. 예술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미는 것이라면 개인적 심미안의 작동으로 스스로 해결할 문제 아닌가 싶은 거지.

이와 관련된 기사를 찾아서 읽어 보면서 대중음악에 부여하는 시선이 참으로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곡에 대한 해석도 각양각색일 수 있는데 아이유에게 쏟아지는 비난부터 음원 폐기까지 다양하더라고. 이 영화를 보면 제제와 밍기뉴의 관계나 제제와 뽀루뚜가의 관계가 비슷한 감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랑의 범주에 속하는 우정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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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출판되자 어른이 된 제제는 그의 원고를 가지고 망가라치바에 부딪쳐 세상을 떠났던 뽀루뚜가를 만나러 간다. 제제와 같이 보낸 뽀루뚜가와의 시간이 그의 성장기에 많은 그리움을 남겼으니 둘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쓸 수 있었겠지. 어떤 사물이든 인간이든 그들과 나누는 시간이 그리움으로 남으면 그때는 모르던 느낌들이 얼마나 귀한 마음이었나를 느낄 수도 있는 거 아닐까. 작은 웃음 지을 수 있는 그 시간은 나를 기운 나게 해 주기도 하거든.

‘사랑’이 인간에게만 허용되는 것으로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반드시 이성 간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나무도 구름도 흐르는 강물도 사랑한다면 어떤 수식어를 가져다 붙일까. 밍기뉴를 듬직한 친구처럼 여기며 올라타기도 하고 끌어안기도 하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어린아이 제제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신날까. 철들지 않을 수야 없겠지만, 제제를 기억하며 가끔은 철들지 않는 시간을 꿈꾸게 되잖아.

이 책은 이런 거란다. 마치 어떤 대통령이 “자기나라 역사 모르면 혼 없는 인간”이라는 말과 다를 게 뭐 있어. 이 책을 펴낸 출판사 동녘의 장엄한 메시지가 독자였던 아이유라는 가수에게 그럴싸하게 타이르는 것은 그야말로 헤프닝이었다. 10일에는 출판사가 공식 사과를 했다고는 하더라. 감히 독자의 고유한 영역인 감상의 범주를 침해하다니. 나는 오히려 아이유가 출판사를 상대로 한마디 던졌다면 싶은 심정이더구먼.

그래, 아이유의 노래 ‘제제’ 는 내 취향은 아니더라. 그녀의 담백한 목소리로 들려오던 리메이크된 김창완의 ‘너의 의미’ 같은 느낌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싶은 정도이지. 노랫말을 만들고 곡에 담아 부르는 가수의 마음마저 대중이 알고 있는 이미지를 들이밀어 재단할 이유가 뭔지 이해가 안 가더라. 한편으로는 역사 교과서 하나 제대로 못 해석해서 헛소리 해대는 혼 없는 인간의 물타기 작전에 휘말린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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